사실 말이 회의이지 거의 사장의 잔소리이다.
자신만의 철학과 확신이 담긴 이야기들로 가득채워져 있는 잔소리
회의는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이라는 명제는 잊은지 오래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버린 20년전 이야기를 현재에 적용한다.
그러면서 작금의 상황에 대해 직원들의 태도가 자신의 예전과 같이 않음을 지적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본인의 과거에 있음을 확신하며 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주제와 아무 관계 없는 ‘지난 주말에 만난 사람 이야기’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한 시간 반정도 이어졌고,
회의인지 수다인지 경계가 모호했다.
반성을 해야할지, 경청을 해야할지, 공감을 해야할지 고민할 무렵
"예를 들자면, 그렇다고~"라며 다행히도 회의가 종료되었다.
사장 친구의 아들이 대학에 떨어진 이야기와 내 업무와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지만 나는 그저 웃었다. 아니 웃고있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1시간 반의 시간을 빼앗고나서야 사장은 회의실을 나갔고,
함께 굽실거리던 임원이 약 30분가량 본인의 잔소리를 덧붙였다.
“자, 이제 우리 열심히 일해보아요! 화이팅!”
라고 외치던 시간은 오전 11시.
쌓여있는 실무를 쳐 내기엔 너무도 짧은 오전시간이 되어버렸다.
정신적으로나 마음적으로 너무 지쳤버렸다.
건방지게도 저런 수준 낮은 리더들을 위해 투자하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워졌다.
어느 조직에서나 평가와 관련한 제도는 실로 세심해야만 한다.
사람의 가치가 상품처럼 알파벳과 숫자로 표현되기에 마음에 생체기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사장은 직원 명단을 가지고 오라는 말과 함께 나를 사장실로 불렀다.
이윽고 직원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며 점수가 매겨졌고 그렇게 한 해의 평가와 연봉이 정해졌다.
구체적인 근거나 수치는 없었다.
그저 사장의 머리속에서 기억되는 모습이 평가척도였다.
야근과 주말근무를 많이 하는 직원은 열심히 한다며 높은 점수를 주었다.
자신의 의견을 열심히 피력하는 직원은 뺀질댄다며 낮은 점수를 주었다.
높은 점수를 준 직원의 낮은 업무성과는 그가 처한 환경 탓이었다.
낮은 점수를 준 직원의 높은 업무성과는 좋은 거래처를 덕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렇게 평가를 졸속으로 마친 후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회사도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성과급을 주자!”
알고보니 군소업체의 사장들끼리 다녀온 여행에서 주워들어온 생각이었다.
잘하는 직원에게는 더 많은 보상을 줘야한다는 당연한 말을 새롭게 했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곧 회사의 발전이라고 믿는말도 덧붙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성과급 제도’를 도입을 명했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 명령의 진실성을 믿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는 지속력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함께 논의를 하던 팀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에게 괜한 희망고문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래서 우리는 진행은 하되 속도를 늦추었다.
사장의 마음이 변하는 기류를 보면서 말이다.
두 달이 지나서야 기획안을 완성하게 되었고,역시나 사장의 마음은 바뀌어있었다.
"꼭 이렇게 복잡하게 줘야해?"
이후 정확한 지시없이 흐지부지 되었다.
복잡하다는 것은 그저 핑계였을 뿐이었다.
혹시나하고 성과금을 기대했던 일부 직원들의 마음 속에는 상처와 불신만 남았다.
새로운 임원이 영입되었다.
현재의 난국을 파개할 해결사라고 했다.
임원은 혼자오지 않았다.
마치 어벤져스처럼 본인의 사람들을 몇 명 데리고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장은 그가 엄청나게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기대에 부응하듯이 그는 등장과 동시에 맹활약을 시작했다.
출근한지 불과 이틀만에 회사의 모든 것을 파악했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사의 모든 부문에 관여를 시작했다.
모든 보고는 그를 통해야만 했으며, 의사결정을 받아야 했다.
경영에서부터 영업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조직도에도 없었고 명확한 직책도 없었다.
왜 그에게 보고를 하는지도 모른채 직원들은 결재문서를 들고가야 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는 모든 직원을 강의장에 소집하였다.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직원들에게 따져외쳤다.
‘열정’을 외쳤다.
힘들게 구직 중인 ‘윌 스미스’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며, 회사에 감사하라했다.
또한, 지금 회사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회사의 목표를 아는지 물었다.
그리고 본인이 거래처에서 회사에 얼마의 이익을 남겨주고 있는지(밥값을 하고 있는지)도 물었다.
대답을 못하는 직원들에게는 당연한 것을 모른다며 정신자세에 대해 다그쳤다.
사장은 그런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직원들은 의아했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매출액이 500억을 돌파했다며 축하파티를 했는데 어째서 갑자기 위기상황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 매출목표가 불과 일주일 전에 조정된 것도(임원들끼리 조정한 것도) 몰랐다.
사장이 직원들이 회사의 이익을 상세히 알면 월급을 더 달라고 할 것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본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더욱 알지 못했다.
그저 혼내길래 혼날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따져 묻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반성하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경험적으로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키는 일을 그저 하기만 하면 되었다.
조금만 더 웃고, 조금만 더 잘보이면, 월급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사장이 하는 잔소리를 대행하는 사람이 되면 더 많은 보너스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인사(HR)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나의 내면의 소리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본능에서 거부하는 일을 강행하면서 얻는 딜레마와 스트레스를 피하고자 함이었다.
물론 나도 사회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는 인정하려 했다.
그래서 사적인 심부름이나 사장 남편 소유의 건물관리 정도는 군소리 없이 했다.
하지만 매일처럼 들리는 직원들의 험담은 참기 힘들었다.
뚱뚱한 직원이라서 미련하다는 말을 맞장구치며 월급을 받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27살에 첫 취업을 한 후, 어느덧 다섯 번째 사직서가 되었다.
주변의 누군가는 이미 나에 대해 끈기없는 놈이라고 빈정대고 있었다.
10년동안 다섯번이나 퇴사를 한 것은 문제가 회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둘러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커리어로는 어디에도 취업할 수 없다고 했다.
나 역시 퇴사는 두려웠다.
불확실성이 두려웠다.
가진 것이 많으면 두려움은 커진다.
지켜야 할 가족의 일상은 특히 더 가중치가 붙는다.
주기적으로 입금이 되는 월급은 그 두려움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 더 두려웠다.
옮겨다니는 회사의 특성(정확히는 대표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모습이 두려웠다.
나의 본질을 잃는 것,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행복하기 위해
모순적으로 퇴사를 하면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먹고싶은 걸 못 먹고, 사주고 싶은걸 못 사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퇴사를 했던 이유는 일단 나의 행복이 회사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출금과 처자식을 둔 30대 중반의 가장이라해도 행복하고 싶었다.
벌써 다섯번째 퇴사
첫 직장의 퇴사때부터 지금까지
20대부터 30대까지
퇴사에 대한 고민은 많았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난 늘 행복하려고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