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로 Aug 25. 2024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완성한 그림책

새벽을 배달하는 소년

#새벽을배달하는소년


아이들의 책이 때로는 어른들의 책보다 철학적이다. <새벽을 배달하는 소년>도 그렇다. #도그맨 으로 유명한 데브필키가 쓰고 그린 이 책은 #칼데콧아너 수상작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스스로 일어나 신문 배달을 하는 소년의 짧은 스토리 속에 그림과 색을 통해 극적으로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이 책이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여러 개의 대척점에 있는 요소를 끌어와 하나의 세계를 완성 시킨다는 것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정반합의 변증법 구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라고 할까. 반대되는 요소를 찾는 재미와 그것을 쫓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완성되는 스토리와 메시지가 일품이다.



1. 어둠과 빛

: 이 책의 기본적인 배경은 세상 고요하고 어두운 새벽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을 배경으로 소년의 방에 불이 켜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둠의 고요가 만든 정적을 깨는 빛. 그리고 그 빛은 소년이 신문 배달을 위해 타고 움직이는 자전거 헤드라이트로 이어진다. 어둠을 가르는 이 작은 빛 한줄기가 세상을 곧 양분시키지만 빛이 지나고 난 자리에는 더 이상 어떤 구분이나 어둠이 남아있지 않고 또 다른 세상을 기약한다. 마을 어귀의 동물들의 움직임, 하나둘 켜지는 창문 너머의 빛까지.


2. 정적임과 움직임

: 숲, 나무, 집, 산 그리고 하늘의 달과 별까지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닐 테다. 어쩌면 이것은 에너지를 강력하게 응축하고 있는 가장 큰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 그런 것들을 간과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세상을 뒤덮은 웅숭깊은 정적인 에너지는 소년과 소년의 개로 인해 비로소 가장 크게 태동한다.


3. 혼자 혹은 둘

: 하나로 시작된 세상은 둘로 완성된다. 단편적으로 보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들은 오롯이 혼자다. 만물의 이치가 그렇다. 어딘가에 속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적과 관계를 잘게 부수고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은 혼자일 뿐이다. 데브필키는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소년의 개를 등장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홀로 어둠을 이겨내고 신문 배달하는 강인한 소년으로 캐릭터 설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인간 심연에 드리운 고독와 나약함을 나누는 존재로 또 다른 생명을 곁에 둠으로써 만물의 이치를 뛰어넘는 유대와 연대의 가치를 이야기에 심었다.


4.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 소년이 배달하는 신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다. 지면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과거다. 세상에 어스름하게 뿌려지는 우주의 빛조차도 수십 년에서 수억 년 전의 빛일지도 모른다. 오직 소년이 배달할 신문만이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이야기고, 과거를 미래로 전달하는 소년만이 현재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끊임없이 잇고 있다. 과거를 증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다, 정작 현재를 놓치기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소년이 신문 배달에 집중했던 것처럼,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오직 지금 뿐이다. 현재에 충실하면 과거와 미래는 자연스럽게 나를 관통하게 될 것이다.


5. 무거움과 가벼움

: 신문 배달을 위해 소년은 작은 가방에 신문을 접어 가득 채운다. 시각적으로 신문이 가득 찬 가방은 무겁게 소년의 어깨를 짓누르며 땅을 향한다. 하지만 동이 틀 무렵 배달을 마친 소년의 가방은 더 이상 가방이 아니다. 가방은 전쟁의 승전보를 알리는 펄럭이는 깃발처럼 묘사되어 있다.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힘차게 보인다. 누구나 살면서 소년의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있다. 이 무게에 짓눌릴 것인가. 아니면 결국인 이겨내고 앞으로 내달릴 것인가.


<새벽을 배달하는 소년>은 이처럼 시각적인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세상의 존재와 조화를 증명한다. 이분법과 형식논리가 가득한 세상에 이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가 있을까.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없다. 오직 모든 것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존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백미는 형용할 수 없는 색채에 있다.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차치하고 그냥 책 자체가 아름답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책친구들에게 추천한다.



조금씩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 깨어나고 있어요. 달과 별들이 사라지고, 하늘은 주황과 분홍으로 변하고 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해를 쬐며 허송세월로 바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