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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Sep 29. 2020

카타르 탈출 계획

한국으로 가는 줄 알았더니...


이전 글에서도 썼듯, 나는 카타르 생활이 점점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한번 그 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남은 나날들이 걷잡을 수 없이 괴롭기만 했다.


한국어 강사로 나가며 그나마 숨통을 조금씩 트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긴긴 방학으로 오래 쉬게 되자, 여기에 왜 이러고 있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면 일어나 혼자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면, 진짜로 그 때부터는 갈 곳도 할 것도 없었다. 바깥을 내다보면 바다와 사막만 보였다. 따로 내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교통이 있는 곳도 아니라서 진짜로, 말 그대로 '집에만' 있어야만 했다.


본격적으로 남편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자 조르기 시작했다.


-저기 김박사님? 이것 보세요. 우리가 원래 호주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 아니었나 말입니다??


내 입에서 이런 소리만 나오면 오빠는 진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그..그게.. 그렇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걸 어떡햐...

-그냥 한국에 가자!! 나 진짜 여기서 1년이고 2년이고 시간 지나도 이렇게일거 생각하면 도저히 못 견디겠어.

-그게 쉬운 일이냐구...ㅠㅠ 나 지금 한국 가면 직장도 없잖어 ㅠㅠ

-내가 먹여살릴게!! 아니!! 우리 둘 다 영어도 잘하고...뭐 무슨 굶어 죽을 걱정이야????

-조금만 기다려 봐... 내가.. 사실 여기저기 원서를 냈어.

-또 어디 !!!


불쌍한 남편은 내가 카타르에서 우울증이 오자, 혼자 이리저리 알아보며 이력서를 내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고, 매일 집에 감금아닌 감금 생활만 해야 하는 사막 라이프에 너무 지쳐 나는 한국으로의 탈출을 선언하고야 말았다.


-오빠.. 미안해.. 나 12월 말까지만 여기 있고 당분간 한국에 가 있을게. 나 너무 우울하고 너무 한국이 그리워. 정말 노력해 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


향수병은 정말 무서운 병이었다.


하루종일 고향 생각만 났고, 하루종일 그 곳의 음식만 먹고 싶었다. 엄마와 아빠와 우리집 강아지, 평소에 매일 싸우기만 하던 남동생까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오빠가 출근하고 혼자 커피를 마시며 갈 데도 없어 집에 마냥 앉아서 먼 사막을 보고 있으면, 그냥 눈물만 흘렀다.


는 말 없이 한국 행 티켓 발권을 도와주었다.


-나도 너 가고 곧 휴가 내고 따라갈게. 티켓 발권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잘 버텨줘. 미안하고 고마워..


그렇게 한국 행 날짜가 정해지자 하루하루가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그러던 중. 가 하루는 어깨춤을 추며 집으로 돌아왔다.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Monash University(모나쉬대학교)에서 조교수를 모집하는 공고에 원서를 내고, 사실 기대도 않고 있었는데 서류에 합격했다는 것!!


보통 호주 대학교에서 교수를 뽑을 때 서류에 합격했다는 건, 심층 면접을 위한 최종 3인에 선택되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호주 사회는 한국 사회 이상으로 인맥 사회이다. 는 사실 박사 졸업하기 바로 직전에도 Monash University 조교수 모집에 최종 탈락한 적이 있었고, 그것 뿐만이 아니라 호주 내의 여러 포지션에서 이상하게 최종 면접에서 계속 쓴물을 삼켜야만 했었는데, 알고 보니 모두 인맥의 문제였었다.


호주에서는 어디 새로운 포지션이 열릴 때,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똑같이 자격이 충족된다면, 그 회사 내의 사람들이 A와 일해 본 적이 있거나 A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때, A를 뽑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자격이 안 되는데 밀어주는 인맥이 잘못 된 것이지, 자격이 되는 사람에 한해서는 인맥이 활용되는 걸 오히려 "검증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더 믿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사실 또 가 최종 면접에 올라갔다 한들, 이번에도 별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 대학교는 그와 아무런 연고도 없고, 그 곳에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리고 그 포지션에 대해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유 또한, 사실은 내가 다시 호주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불과 몇 개월 전에 호주야, 이제 영원히 안녕!!!! 나 한 10년 뒤에나 놀러 올게!!! 하고 지인들과 찐-한 굿바이를 하고, 모든 짐은 헐값에 팔고 연금은 조기 인출하고 은행계좌는 싹 다 닫고 왔는데, 다시 그 곳에 가고 싶을 리가 있겠는가....


별 기대가 없이 무심한 나와는 달리 오빠는 인터뷰 준비에 밤을 세웠다.


매일같이 예상 질문을 뽑고 혼자 답변을 만들고 연습을 했고, 나랑 스카이프 연결을 해 카메라를 이리저리 조정하며 가장 본인이 잘 나오는 각도까지 세팅하고, 조명과 배경까지도 신경을 썼다.


나는 속으로 에휴.. 저러다 떨어지면 많이 슬퍼할 저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 주나..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고 면접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오빠는 온 신경이 곤두서 굉장히 예민해졌고,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아무 생각이 없던 나날들이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한국 갈 생각에 들떠있었...)


면접 날, 호주와의 시차 때문에 나는 자고 있었고 오빠는 다른 방에서 면접을 끝냈고,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 면접을 아주 잘 봤다고 했다. 모의 면접을 함께 수없이 연습 해 본 입장에서, 모의 면접대로만 했으면 정말 잘 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인맥이 없는데 어떡해. 그게 호주에서는 결정적인데..


그러고 며칠 뒤. 오빠는 모나쉬 대학교에서 이상한 메일을 받았다.


최종 면접 후 바로 한 사람을 정하는 게 순례인데, 이례적으로 후보자 3인 모두에게 Dean(학장) 면접이 추가로 스케줄 잡혔다는 것.


이게 좋은 징조야, 나쁜 징조야?


갸우뚱거리고 있는 나와는 달리, 오빠는 이거야말로 '내정자'가 없다는 증거거나, 아니면 자기를 제외 한 다른 두 후보가 둘 다 인맥이 있어, A파와 B파가 세력 다툼을 하다가 답이 나지 않자 결국 학장까지 가게 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다.


오빠는 그날부터 학장님을 구글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디서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무얼 전공하고 어떤 논문을 썼는지.


그리고 오빠는 학장님의 이력서를 보고 쾌재를 불렀다...


학장은 독일 사람이었는데, 오빠는 독일의 한 작은 마을 칼스루에라는 곳의 한 회사에서 1년 가량 일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학장이 독일의 그 도시 출신에, 그 곳의 칼스루에 공대를 나온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됐다.

이걸로 없는 인맥을 엮어 보자. 굉장한 우연이다.


그는 또다시 밤을 새 2차 학장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내가 한 마디 던졌다.


-괜히 독일 이야기 잘못 꺼냈다가 어떻게든 엮으려는 인상을 받으면 될 것도 안 되지 않겠어?? 조심해!!

-내가 다 계획이 있어. 걱정마!!



그렇게 2차 면접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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