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호주행이라니....
2차 면접 날.
학장에 대한 엄청난 뒷조사 (구글 신은 다 알고 있다)를 통해 학장의 모든 것을 주루룩 꿴 남편은 자신만만하게 2차 면접에 임했다.
독일이라는 공통 분모도 찾아냈고, 학장의 연구 분야부터 산업 경력까지 그 사람이 호감을 가질 만한 정보와 대답으로 무장한 채, 인터뷰의 서막이 올랐다.
사실 남편은 학장과 독일 칼스루에에서의 공통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전략을 세워서 어떻게 하면 그 부분을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이 학장이 오빠의 이력서를 훑어보고 독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고 한다.
-Dr Kim, 이력서를 보니까 PTV에 있었던데요. (PTV는 교통 관련 독일 회사다)
-아 네, 칼스루에에서 1년 정도 일 하다가 호주 PTV지사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진짜 대박인데요? 칼스루에라니! 내가 슈투트가르트가 고향이고 칼스루에에서 일도 하고 그랬는데!! 이런 인연이 있나!!
참고로 슈투트가르트와 칼스루에는 차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독일의 작은 도시들이다. 독일 인구가 8천만명 가량인데, 칼스루에의 인구는 약 30만명정도, 슈투트가르트는 60만명 정도로 작은 지방 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한국으로 치면 바깥에서 충주 출신 동향을 만난 그런 기분쯤 될려나? ㅎㅎ
먼저 독일 이야기를 꺼내며 자기 고향에 머물렀다는 남편을 만나 신이 난건 학장이었다.
오빠도 이때다 싶어서 그때 일했던 회사에서의 경험과 독일 회사에서 배운 것들을 주루룩 풀면서 둘의 분위기는 점점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학장이 슈투트가르트에 가 본적 있냐고 해서 오빠가 당연하지, 너네 동네 축구 팀도 유명하지 않냐고 갔을 때 축구도 봤다고 그러니까 학장은 축구의 광팬이었는지 신이 나서 축구얘기를 시작했단다.
오빠도 축구를 줄줄 꿰고, 심지어 아주 유명한 골키퍼 올리버 칸이 칼스루에 출신인데, 올리버 칸 얘기까지 나오면서 그 둘은 인터뷰는 이미 잊고는 축구로 대동단결을 해 버렸다.
그렇게 인터뷰가 순식간에 끝나고 오빠가 이랬다고 후기를 들려주는데 나는 솔직히 좀.. 아닌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교수를 뽑는 자리인데 축구 얘기와 고향 얘기만 실컷 했다는건 프로페셔널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학장이 오빠의 전문적인 능력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이래저래 시간이나 때우려고 그런 것 아닐까 하며 내가 약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자 오빠는 콧웃음을 치면서,
-켈리야, 세상 어딜 가나 사람 사는거 다 똑같애. 두고 봐. 잘 된대니까??
하면서 큰소리를 쳤다. 무한 긍정 왕... 이건 바로 나의 남편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그날 새벽 4시인가 5시인가.
둘다 곤히 자고 있는데, 자다가 늘 새벽에 깨는 습관이 있던 오빠가 새벽에 깨서 몇 시인지 본다고 휴대폰을 보더니 번개에 맞은 듯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마구 흔들어 깨우곤 '국가번호 61이 어디지??' 하고 묻는 게 아닌가. 나는 자다 봉변을 당해 머리가 혼미했지만 국가번호 61은 호주야.. 호주잖아. 하고 대답하곤 다시 곧 잠이 들었다.
오빠는 폰을 가지고 침대 밖으로 나갔고, 나는 설핏 다시 잠이 들었다가 오빠가 전화하는 소리에 깨, 무슨 일이지 하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침대에 기대 앉았다.
가만 생각 해 보니, 호주에서 걸려온 전화라.. 무슨 소식일까 싶었다.
오빠가 전화를 마무리하는것 같아서 밖으로 나가보니, 오빠는 마치 박지성이 골을 넣은 것처럼 바닥에 무릎을 붙이고 앉아 두 손을 번쩍 들며 만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걱정이 된 내가 묻자 오빠는 우와아아아 하고 포효하더니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며
-됐다!! 나 합격이야!!!!! 됐다!!!!!!!!
하고 소리를 마구마구 질러댔다.
호주에서 왔던 부재중 전화는 합격 소식을 알리는 전화였던 모양이었다. 호주와 시차 때문에 카타르엔 한참 새벽에 전화가 왔던 것.
-우와아아아.
나도 같이 기뻐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우리 분명 같이 한국으로 향하기로 했는데, 그럼 다시 호주로 가는 건가?
모나쉬 뭐시기 대학은 어디에 있다고? 멜번?
우리가 살던 브리즈번도 아니고.. 멜번이라니.
그럼 며칠 뒤 끊어 놓은 한국 가는 비행기표는 어떻게 되는 거고? 한국행은 아예 물 건너 간 걸까?
호주로 간다면 일은 언제부터 시작하는 걸까? 또 국제 이사를 해야 하나?
호주엔 집도 없고 차도 없는데.. 불과 몇 개월 전 다 팔고 왔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런데... 제일 중요한건..
나는..
다시 호주로 돌아가기 싫은데. 호주 떠나면서 한국 가서 살 생각에 행복했는데.
다시 호주라니...
남편이 조교수가 되었지만, 나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다시 호주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