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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Jan 04. 2023

애매한 우울을 가진 사람이 쓰는 애매한 에세이

2023년은 나를 더 잘 알 수 있을까

오랜만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용하기 위해 자판을 아무렇게나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키보드 왼쪽의 상태등을 보니 처음보는 빨간색 불이 들어와 있었다. 건전지가 닳은 것이다. 키보드를 뒤집어 근 2년간 방치되어 있었던 다이소 건전지를 꺼내 사이즈를 확인했다. 통장에 있는 잔고가 아주 간당간당한 것을 알고있지만 기기의 수명을 위해 편의점에서 건전지를 사기로 마음을 먹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갑자기 과자가 먹고 싶어져서 닳은 건전지는 핑계가 되어버렸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갔더니 건전지를 꽤나 비싸게 팔고있었다. 더 싸게 살 수 있을까 해서 다른 편의점을 둘러보기 위해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와버렸다. 빈손으로 가게를 나오면 도둑으로 의심받지 않을지 항상 걱정이 된다. CCTV가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3분 거리 안에 있는 다른 편의점에 가서 건전지를 사왔는데,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대충 헛걸음이었다는 소리다. 아무튼 편의점에서 꽤 비싸게 주고 산 건전지를 손에 들고 집에 들어왔다. 아, 오는 길에 과자와 아이스크림, 이모에게 줄 젤리도 같이 사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스크림을 까서 입에 넣었다. 오자마자 식탁에 아무렇게나 던졌던 새 건전지를 꺼냈다. 3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아직도 건전지의 +, -를 구분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아주 친절하게도,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해 건전지에도, 건전지가 필요한 곳에도 +, - 표식을 세겨놓았다. 항상 +가 세겨진 쪽을 먼저 확인하는게 습관이다. 이 습관대로 +를 확인하고 건전지를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이 키보드는 두개가 필요했다.


내 머리는 글을 쓰고싶어한다. 나는 무척 게으르다. 하루에 먹은 것들을 다 소화시키지 못하고 새벽에 잠이 든다. 머릿속은 온갖 걱정,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들로 꽉 차있다. 지루한 수능공부에서 벗어나고자 택했던 독서를 멀리한지 벌써 10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싶어한다. 아, 지금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싶지만 나의 복잡하고 게으른 머릿속은 언제 그걸 허락할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거실 티비 화면에 나오는 넷플릭스를 보고있다. 엘리트라는 스페인 드라마다. 얼마전부터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져서 볼 생각이 없었던 스페인 드라마로 스페인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꾸준히 볼 것이다. 인기가 많은 작품인데, 살짝 어설프고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자만 꽤나 재밌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가벼운 마음으로 이력서를 쓰고, 제출하고, 면접을 볼 수 있을까? 마음으로는 아주 소규모의 중소기업도 괜찮다고 하지만 막상 중소기업에 지원하려고 하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집에 있기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집순이지만 새로운 경험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막상 새로운 경험에 임박하면 조심스러워진다.


방금 전 언급했지만 나는 장편소설을 쓰고싶다. 그래서 하루에 한편씩 아주 사소하고 형편없는 글을 올릴 예정이다. 주제가 무엇이든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나의 생각을 털어놓을 글을 쓸 것이다. 사실 지금 가장 시급한건 돈이다. 정말이지 돈이 엄청 급하기 때문에 이번 주말에 쿠팡 알바를 하기 위해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나의 길고 긴 백수기간 동안 쿠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는 중이다. 어릴 때는 왜 인생이 살기 쉽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와 같이 내향적이고 게으르고, 우울함이 있는 사람에게 세상살이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혼자 무덤덤하고 무감각하게 살다보니, 어느새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꺼려지는 사람이 되었다.


어쨌든, 오늘 하루의 마무리는 추억의 과자인 포스틱이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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