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시절,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진급했을 때 다들 빈말이나마 축하해줬다.
상병이 되니 당시 소대장은 “아직 군 생활 시작도 안했다”고 하더라.
병장을 달았을 때는 “이제 군 생활 시작했네”라고 말했다.
놀리려는 농담인 걸 알면서도
나는 ‘도대체 군 생활은 언제쯤 시작하는 거야?’라며 마음속으로 빈정거렸다.
영어 공부를 하던 때였다.
강사는 ‘Commencement’라는 단어를 소개하며
‘시작’이라는 뜻을 가졌지만 동시에 ‘졸업식’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역설했다.
병장을 달았더니 이제 군 생활 시작이라던 소대장의 추억이
지겨운 대학 생활 및 취업 준비 스트레스와 겹치면서 분노가 증폭됐다.
‘아니, 매번 시작만 하면 도대체 끝은 언제 나는 건데?’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32살.
2020년을 보내고 2021년을 맞이하면서
문득 군 생활 시절과 영어 공부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모든 걸 빨리 끝내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직업·성격·사고방식·지인·생활습관 등이 정해져버리자
무엇인가 아쉬워졌다.
새로운 걸 경험해보고 싶고,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끝은 곧 시작'이라는 말을 믿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