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오 년 삼월 이십일 새벽 네 시
이 글은 20일 새벽, 집 앞에서 벌어진 싸움을 우연히 목격한 뒤, 순간의 감정에 따라 노트에 끄적여둔 글을 조금 손 보아 옮긴 것임을 미리 밝힌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기계적으로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데 싸우는 소리가 제법 가까이서 들려왔다. 격렬한 고성이 오고 가는 소리를 따라 홀린 듯 베란다로 나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남자와 택시를 운전하는 남자가 시비가 붙었다. 우리 집은 5층이라 그들의 얼굴이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다. 오직 소리와 몸짓만을 보고 들었다.
맥락 없이 쏟아지는 거친 욕들 사이로 드문드문 문장다운 문장이 포함되었다. "내가 분명히 너 먼저 가라고 했지! 이 어린놈의 새끼가." 택시 기사의 말이었다. "왜 욕을 하시냐고요, 그러니까 왜 욕을 하시냐고요!" 오토바이 기사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한참을 의미 없는 욕과 욕이 오고 가다 오토바이 기사가 싸움을 끝낼 결심을 했다. "그냥 타시라고요, 가시라고요오오-" 성난 소리 뒤로 애써 애원을 숨기며 이제 그만 싸움을 끝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가시라고요오오의 늘어지는 말끝이 내게는 절박한 요청 혹은 애원처럼 들렸다. 물론 이건 단지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어린놈이 애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던 모양인지, 택시 기사는 차에 타기는커녕 더 거센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씨발새끼가, 이 병신 같은 새끼가,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얻다 대고 욕지거리야 이 씨발새끼가. 내가 너 먼저 가라고 했지! 이 씨발 개 같은 새끼가." 택시기사의 분노가 점진적으로 커져 클라이맥스를 탁 치고 내려오려는 순간, 오토바이 기사가 양손을 들어 택시 기사를 밀쳤다. 두 사람의 신체가 맞부디친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 순간 나는 경찰을 불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던 바로 그 찰나에, 이번에는 오토바이 기사 쪽의 분노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갔다. 오토바이 기사는 두세 번 더 택시기사의 어깨를 밀치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니까 왜 욕을 하시냐고요, 욕을 하니까 어린놈한테 욕을 먹지 이 씨이발새끼야아아!" 울부짖음에 가까운 외침을 끝으로 오토바이 기사가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택시 기사는 절대 이대로는 보내줄 수 없다는 듯 쉬지 않고 욕설을 퍼부으며 오토바이를 끌어안다시피 했지만 오토바이 기사는 택시 기사를 한 손으로 밀어내며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떠나가는 오토바이를 향해 터져 나오는 택시기사의 마지막 분노가 거리를 울렸다. 그렇게 끝이었다. 적막한 거리에서 별안간 벌어진 새벽의 싸움이 다소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다. 방금까지의 소란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익숙한 적막이 재빠른 속도로 다시 거리를 메웠다.
택시 기사는 오토바이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가 조용히 택시를 향해 걸어갔다. 방금까지의 그악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깨를 말아 넣은 채 터덜터덜 걸어 운전석 문을 여는 중년 남자 하나가 거리에 남았다. 그리고 그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내가 있다. 택시는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결국 내가 먼저 창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는 새벽 네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새벽 네 시는 이 늦은 새벽일까, 이 이른 새벽일까. 오토바이 기사는 몇 살이었을까. 택시 기사는 또 몇 살이었을까. 서로가 서로를 향해 포효하던 순간, 그들은 어떤 눈빛을 하고 있었을까. 오토바이 기사의 씨이발새끼야아아 하는 마지막 외침이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오토바이가 거리를 빠져나가 시야 너머로 사라진 순간, 어린 기사가 복받치는 울음을 터트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적막 속에 홀로, 한참을 빈 택시 안에 앉아 있었을 택시 기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집에 잠들어 있을 처자식의 얼굴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토해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어차피 나 혼자만의 상상일 뿐인 싸움 뒤의 이야기들이 나를 조금 서글프게 했다. 대체 왜 내가 서글퍼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저마다의 뒷모습이 짠한 이미지로 내게 와 박혔다. 나는 어쩌면 두 사람의 뒷모습을 모두 본 유일한 사람이었을 테니, 몰래 본 싸움 구경의 비용이려나 싶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덩달아 잠들지 못한 새벽, 식탁에 가만히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다 문득, 이런 사람들이 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싸움의 순간이 아니라 싸움 뒤의 적막이, 부딪치는 순간이 아니라 돌아서는 뒷모습이 글이 되어야 한다고. 무자비한 욕설과 폭력 너머의 행간을 응시하는 일이야말로 문학의 책임이자 의무가 아니겠느냐고.
조금은 불편하고, 대체로 찝찝하고, 짜증 나게 짠한 행간의 이야기들이 적확한 문장을 찾아 세상으로 부지런히 나와 주기를,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기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간절히 바라본다. 세상 모두가 작가가 되는 세상이라지만, 모든 글이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나는 그저 이 세상 모든 문학도와 문학가들의 무운을 빌어 볼 뿐이다.
아무쪼록 젊은 오토바이 기사와 늙은 택시 기사의 남은 오늘은 부디 평안하기를. 새벽의 소모적인 싸움은 모두 잊고, 어느 것도 가슴에 흉터로 남겨두는 일 없기를. 인간이 인간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봐 주는 세상이 오기를,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또 바라게 된다. 너도 나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짠하지 않은 생은 없을 테니,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