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는 어디에
약 12년에 걸친 교사로서의 삶 속에서 만났던 아이들을 사랑했고, 그 아이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수업이 재미있단 아이들의 말에 행복했다.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나름 인정도 받았었다.
교사가 내 천직이라 생각했고,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을 만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사직하신 다른 선생님들처럼 정말 버틸 수 없을 정도의 힘든 일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난 학교를 떠나고 싶은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생각의 끝에 다다른 결론 중 하나는 내 “성향” 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난 참 예민하고 걱정도 많은 아이였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쉽지 않았고 그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렵기도 했다. 무조건적으로 내편이었을 엄마에게 조차 작은 부탁 하나 하는 것도 용기를 냈어야 했던 나였으니 말이다. 그런 성향의 내가, 나 자신을 책임지는 게 두려워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내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니 힘에 겨울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책임지라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힘든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시간들 때문에, 아니 그랬던 나 자신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교사를 하면서 생긴 자가면역질환도 역류성식도염도 힘들었던 시간들의 결과물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혼이란 걸 하게 된 것도 현실도피성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일은 좀 쉴 수 있겠단 생각. 당시엔 육아라는 엄청난 산이 있는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다. 산 넘어 산이라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었다. 두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들 역시 소중하다는 생각이, 그런 아이들을 과연 내가 잘 이끌고 잘 가르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나를 학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동안은 무작정 그냥 학교를 떠나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 내가 정말 학교를 떠나고 싶은 건가? 아니면 그저 도망치고 싶은 건가? 도대체 무엇 때문이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요즘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 덕에 아이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도 가지게 되었다.
잊고 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되새기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예뻤던 아이들.
사랑해 주고 사랑받던 순간들.
절대 잊지 못할 순간들.
힘들었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서 미화된다고 했던가?
행복했던 시간들이 내 기억 속에 더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무언가 두렵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음은 여전히 고개를 젓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 아니라고 하는지 아직은 명확지 않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니까. 마음이 또 어떤 말을 내게 건네겠지.
그래. 이제 겨우 마음먹은 거잖아. 그것마저도 온전치 못한 마음인 거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천천히 생각해 보자. 언제 가는 길이 보이겠지.
좀 늦더라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