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파란불이 아니 초록신호가 깜빡인다.
잠깐 뛰어볼까 하다 이내 그만둔다. 20대 때는 설사
건너지 못할지라도 무조건 뛰고 봤는데, 이젠 몸이 뛰기를 거부한다. 아마도 정말 늙어가는 중이지 싶다.
금세 빨간 신호로 바뀌어 버린 건널목 앞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타야 할 버스 번호를 체크해 본다.
가끔씩 난 버스를 탄다. 남편은 번거롭게 차를 가져가지 왜 버스를 타냐고 하지만, 난 버스가 더 편하고 좋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버스를 타면 어김없이 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통학했던 때가 생각났다.
대학교 1학년 때였을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 사랑한다는 그 말, 아껴둘걸 그랬죠. 이젠 어떻게 내 맘 표현해야 하나. 모든 것이 변해가도 이 맘으로 그댈 사랑할게요. “
성시경의 ‘ 내게 오는 길 ’을 듣고 목소리에 반해 몇 해를 그에게 빠져 지냈었다. 다정한 듯 따뜻한 목소리.
여전히 난 그의 팬이다.
오늘 탄 버스에선 라디오 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승객들의 작은 말소리만이 그 공간을 유영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펼쳐 들고 천천히 걸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곳.
서점에 왔다.
아이들과 남편을 집에 두고 아주 가끔 외출하는 날이면 난 어김없이 서점으로 향한다. 서점에 오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이유 없이.
대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사는 지역에 대형 서점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버려 아쉬움 가득이다. 책을 좋아하는 큰 아이를 데리고 함께 나오고 싶었지만 오늘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하나 사들고 가야지. 둘째 꼬맹이것도 함께.
서점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 베스트셀러는 무엇인지, 나에겐 오늘 어떤 책이 베스트일지.
한 때 에쿠니가오리의 책에 빠져 그녀의 책들만을 탐독했던 적이 있었다. 슬픔을 담담하게 적어내는 그녀의 문체가 마음에 와닿았었다. 그녀의 책 ‘빨간 장화‘는
아직도 가끔씩 들춰 보는 책 중의 하나이다.
오늘 내가 마주한 책은 정신건강전문의 윤우상의 -엄마 심리 수업-이다. 무심코 집어 들었는데 나에게 필요한 책이지 싶었다. ‘ 엄마의 무의식이 아이를 키운다. ’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뭘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 때문에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 미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들로 무언가 미안해하기도 또 자책하기도 하는 나라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 책으로 인해 엄마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시간을 계속 확인한다. 서점에 와 있으면서도 내 정신의 일부는 집에 가 있다. 잠든 꼬맹이가 깨서 안 울고 잘 있는지 큰 아이는 뭘 하는지. 아이들에게 벗어나 내 시간을 찾으러 왔음에도 여전히 난 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다. 엄마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며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 계산을 하고 서점을
나섰다. 집에서 나올 때 보다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이 더 가벼움을 느끼며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다.
내 맘을 알아챈 걸까? 집으로 가는 버스가 곧 도착함을 내게 알렸다. 비 내리는 저녁, 어둑해진 창밖의 풍경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건 내 마음이 그러해서 일테다.
버스에서 내려 건널목 앞에 섰다.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집, 우리 집이 코 앞이다.
가끔씩 아니 자주 탈출 하고픈 곳이지만 금세 또 그리워지는 그곳. 세 남자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난 오늘도 씩씩하게 걸어간다. 지지고 볶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