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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바다 Mar 15. 2024

그 남자가 남편이 되기까지

에피소드 5. 뭐.. 뭘 하면요?


그 남자는 우리의 만남에 무척이나 적극적이었다. 가깝지 않은 거리를 매주 날 보러 찾아왔고, 평일에도 한 번씩 일을 마치고 내려와 날 보고 또 그 길을 되짚어가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그 남자가 적극적이지 않았다면 아마 난 지금도 혼자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너무도 분명하게 든다.  어쩌면 난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에 있어 내 선택이 아닌 그의 선택을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믿은 그의 선택을 말이다.


집 앞 작은 사거리 앞에 그가 서 있다. 청남방에 짙은 갈색 무스탕을 걸친 그.


“ 오늘 옷 예쁘네. “

“ 아, 정말? 이거 되게 오래 입은 옷인데. 하하. “

“ 잘 어울려. 예뻐. “

“ 고마워. 우리 밥 뭐 먹을까? ”

“ 여기 바로 근처에 즉석 떡볶이집이 있어. 괜찮으면 거기 갈래? “

“ 좋아. ”


바울아저씨.

즉석 떡볶이와 씬피자를 팔던 곳. 내가 좋아하던 곳이다.


“ 떡볶이랑 고르곤졸라 피자 먹자. 괜찮아? “

“ 응. 난 다 잘 먹어서. “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는 배가 고팠는지 피클과 단무지를 몇 개나 집어 먹었다.


떡볶이가 먼저 나왔다. 버너 위에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리는데 채 끓기도 전에 떡볶이를 뒤적이는 그. 배가

고픈 건지 성격이 급한 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였던 거 같다. 지금도 아침은 먹지 않고 커피 한잔으로 대신하는 그. 아마 그때도 아침은 걸러서 배가 고팠었던 모양이었다.


떡볶이가 끓어가는 중간에 피자가 나오고 나에게 먼저

피자 한 조각을 건네는 그.


“ 먼저 먹어. 배고픈 거 같은데. “

“ 자기 먼저 먹어. 난 어차피 많이 먹을 거야. 하하. “


그러고는 정말 열심히 먹는 그였다.


“ 집에서 밥은 해 먹기는 해? ”

“ 응. 매일은 아니어도 종종 해 먹어. ”

“ 뭐 해 먹는데? ”

“ 그냥 김치볶음밥 같은 거나 계란밥이나 그런 거? 엄마가 보내주시는 반찬에다가도 먹고 동생이랑 고기도 먹고 그래. ”

“ 그렇구나. ”

“ 나는 가리는 거 거의 없고 웬만한 건 다 맛있더라고. 내가 맛없다고 하는 건 진짜 맛없는 거야. “

“ 잘 먹어서 좋네. ”


같이 살아보니 진짜 이 남자는 그랬다. 짠 거 싱거운 거

안 따지고 반찬이 몇 가지 없어도 잘 먹고 뭐든 잘 먹었다. 단지 한 가지. 심심한 충청도 김치는 좋아하지 않았다.


떡볶이 집을 나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가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과 밀크티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고 노래 하나를 틀었다.



https://youtu.be/5i0j6aosVcg?si=As9pr03bWZ0F-2uf

한번 들어 보실래요? :)


잠자코 노래를 듣던 그가 말했다.


“ 지금 잘해줄게. 앞으로도 잘해줄게. 계속 계속 잘해줄게. “

“ 응? 그냥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서 들려준 건데? 난 이런 류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

“ 그니까 잘해준다고. ”

“ 뭐야, 하하. ”


그는 노래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내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 결혼하면 어디에서 살고 싶어? “


결혼? 속으로 조금 당황했다. 이제 겨우 다섯 번 만난 나에게 뭘 묻는 거지? 하고 생각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 난 원래 익숙한 걸 좋아해서. 그냥 이 동네에 살고 싶어. “

“ 서울은 싫고? ”

“ 서울은 너무 복잡해. ”

“ 알겠어. ”


그러고는 그 뒤에 별다른 말이 없는 그였다. 대체 뭘 알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심각하지 않게 던진 그의 질문에 심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나도 이내 생각을 접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지금은 서로가 너무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아버렸지만 그때의 우린 서로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사랑이란 이름의 착각 속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차를 마시고 나와 손 붙잡고 거리를 걸었고, 헤어짐이 아쉬운 우리는 저녁도 함께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그를 배웅하며 그가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난 그곳에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그리고 우리의 통화는 그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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