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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mp Jun 22. 2022

[영화] 1917

샘 멘데스

전쟁영화라는 특징보다 기생충의 대항마로 갑자기 정해진듯 나타나서 동양영화가 감히 영국 영화제까지 휩쓰는 재난은 막아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영화라는 게 더 이 영화에 대해 내가 가진 정체성이었다. 

2차 세계대전은 일본때문에 우리와도 관계가 있고 히틀러도 있고 해서 익숙한 기분인데, 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의 총성 그거밖에 모르겠다. 새삼 지금 상황에서 관심을 가지고자 하는 건 아니고 대충 1차 세계대전은 욕심쟁이들끼리의 빵다툼이나 다름없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특정하기도 어렵고 나름의 정의가 뚜렷하지 않으니 과연 영화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시점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경험상 뭔가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들은 배경부터 어둡고 암울하고 어디선가 누군가 죽는게 당연한 거 같은 느낌을 주는 게 많았는데 이 영화는 우선 배경이 예뻤다. 그 아래에서 시체와 쥐들이 뒹굴고 사람이 죽어가는데 배경이 아름다고 평온해서 그게 왠지 더 비극적인 느낌이었다. 심지어 폭탄이 터지고 불꽃이 튀는 것도 마치 불꽃놀이같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타이타닉에서도 보면 고요한 하늘과 바다에서 타이타닉만 난리속에 죽어가고 있어서 그 영화를 본지 얼마인지도 모르게 까마득한데도 지금까지 그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 영화가 호평받은 롱테이크 같은, 그러나 실은 이어붙여서 한 장면처럼 만든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리 알고 싶지도 않은 걸 보니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나 관심은 별로 없는게 분명하다. 한때 왜 그런 이상한 생각을 했는지. 화면기법이니 뭐니 잘 알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게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의 동선을 바로 뒤쫓으며 따라가다보니 확실히 영화가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배경이 꼭 게임 캐릭터가 차례로 미션을 끝내고 레벨이 올라가는 것처럼 바뀌고 있다. 갑자기 등장하는 아름다운 배경들에 어느 시점부터였지 싶어 앞으로 다시 돌려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 그러기엔 영화가 몰입도가 커서 그냥 쭉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목숨걸고 명령을 전달하러 가지만 그 목숨 건 고생스러운 과정이 과연 저럴 필요가 있는건가 계속 의문이 든다. 어차피 끝나지 않을 상황에 별 의미가 없는 명령이라는 것이 관객의 입장에서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친구에 의해 끼어서 온 임무인데 정작 그 친구는 허무하게 죽고 혼자 그걸 전달하겠다고 가는 입장에서 이미 보는 나는 허무했다. 어차피 가봤자야, 게다가 시간도 불가능하게 촉박하고 공간 역시 살아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님에도 사지에 던져버린 듯 주어진 임무니까 쉽게 포기해도 추궁받을 일도 없을 것이고 누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중간에 죽은 것처럼 하고 집에 돌아가도 되지 않나, 그랬다. 근데 그럼 뭐 영화 안만들었겠지. 

임무에 대해 열정적이지는 않았던 스코필드는 친구 블레이크의 죽음으로 애도를 위한 열정을 불태워 임무를 완수하고자 했다. 임무를 완수해야 친구의 형이라도 살릴 수 있었고 1600명이나 되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병사들도 조금이나마 명을 늘릴 수 있을테니까, 그 의무감은 사실 무거운 것이었다. 

드디어 전달한 명령서의 유효기간은 단 하루도 가지 않을 지 모르는 상황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계속 명령은 바뀌면서 군인들의 목숨을 담보할 것이다. 초반에 친구에게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스코필드는 마침내 의무를 마치고서는 꼭 살아돌아오라는 가족의 메세지를 가슴에 새긴다. 이해할 수도 없고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도 없는 상황에 던져져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살아남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임을 임무와 친구의 죽음을 통해 받아들인다. 

전쟁영화가 일개 병사의 입장에서 다뤄지면 인간의 목숨에 대한 허무함과 그에 때른 연민과 계급에 대한 불만이 디폴트가 된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다 알면서도 계속 할 수밖에 없다. 다 알면서도 똑같은 짓을 아직도 그들, 앉아서 전쟁을 선택할 권한을 맡은 줄 아는 그것들, 은 되풀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전쟁이라는 배경에서 의도적으로 영상미를 살리고 카메라 기법을 이용해 영화의 가치를 증명했다. 영화는 분명 스토리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는 예선 같은거라 거기부터 엉망이면서 영화 언어 어쩌고 하는 태도는 말도 안되는 거다. 그렇게 영화를 만들면 망작의 지름길로 가는데 왜 스토리를 개연성없이 만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영화들이 많다. 예를 들어 리얼이라던가.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결선에 제대로 오를만한 영화였다고 볼 수 있다. 

이걸 보고싶었던 이유의 절반은 스코필드역의 조지 멕카이 때문이었다. 90년대 초반 태생의 젊은 영국 배우들이 연기도 잘하고 개성있게 잘 생긴 배우들이 꽤 된다. 대표적으로, 아니 개인적으로 잭 로우든, 칼럼 터너 등. 셋 다 키크고 호감있게 잘생기고 연기도 -내가 보기엔 너무 잘해보이는 배우로 같이 묶여서 앞으로도 내내 관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게 될 거 같다. 셋이 같이 그놈의 세익스피어 영화같은 거에라도 나와라. 영국이 사라질때까지 세익스피어는 만들어질 거 같고 셋 다 왠지 고전의 이미지가 있고 그래야 더욱 더 뜰 수 있을 거다.  

솔직히 영국은 전쟁 영화 만들면 안되는 거 아니냐. 너네가 역사에서 뭘 잘했다고 영화로 만들고 생각하는 척하고 그래, 남의 나라에서 뺏어온 문화재나 돌려줘. 독일은 너무 막가다 결국 망해서 사죄라도 열심히 했지 너네는 걔네만큼 잘못 없는거 같아서 그런거냐. 알 수가 없다 진짜. 역사를 자기네 입장에서만 배우면서 그것도 반만 배우는 거 같다.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나쁜데 본인들이 무슨 역사에서 결론을 내린 것처럼 가치판단을 하려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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