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도 좀 알고 일본문화를 어둠의 경로로 즐기던 축에 속했으며 일본문화와 특유의 분위기가 잘 맞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일본인 이름은 안외워질까. 이토 히로부미, 도요토미 히데요시, 얘네들은 알겠어. 임진왜란때 장수들도 꽤 알겠어. 하지만 현대인은 모르겠다....이 영화 중년 남성 배우분, 중년이라는 현실과 한계를 넘어서는 잘생김을 가졌는데 이름을 몇 번 봤는데도 모르겠고, 뭔 중요한 역할인양 혼자 이름 크게 나오는 젊은 배우도 모르겠다. 얘는 얼굴도 잘 모르겠다. 갑자기 생각난 오래된 문제인데 일본 영화보고나니 새삼 끄적이고 앉아있다. 우리나라는 역시 이름 이런걸로도 이렇게 바람직할 수가 없다.
극찬을 많이 듣길래 솔직히 솔깃했다. 그것도 뭔가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처럼 얘기들을 하길래 그게 대체 뭘까 너무 궁금했다. 그런 평의 제목이라도 보지 못했다면 보려고 시도도 못했었을 것이다.
평소 일본 영화를 생각하면 특유의 가라앉고 침착하며 공감성 수치를 덜 느끼게 해주는 배려가 묻어나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 영화만 본 건지도 모르겠는데 뭔가 충격을 주는 것도 최대한 현상을 깨지 않으려는 태도가 많이 보인다. 그리고 또 한가지, 굿바이 같은 영화에서처럼, 살아가면서 해야하는 일 자체를 장인정신을 가지고 버티는 듯한 태도가 어떤 면에서는 현실에서 느끼는 버거움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를 주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내게 그 두 가지를 다 보여줘서 우선 좋았다.
단순한 로맨스 서사들은 직설적이고 직진으로 움직이는 남자 주인공들이 매력이며 그게 다인 경우가 많다. 호평받는 영화들-소위, 인생의 진실을 잘 들여다본다는 평가를 듣는-의 경우 주인공을 그렇게 단순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새삼, 역설적으로 로맨스가 훌륭하지 않은가 여겼다. 아니 뭘 그렇게 외면하고 참고 아닌 척 하고 있지. 그러고 어떻게 견디지. 내가 단순무식한 과인 모양이지만 진짜 잘 이해가 안간다. 멱살을 잡고 흔들어주고 싶었다. 모른 척 할거면 애초에 눈치가 더 있던지. 이미 비행기 내일 타라고 할 때부터 집에 가면 안될 거 같음을 느꼈는데 꾸역꾸역 가더라. 말 못할수는 있다치자, 근데 그게 아무렇지 않은척 대할 일이냐. 연락 안받던지 삐지기라도 하던지. 여기선 심지어 연극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체념인가 싶었는데 또 애정이 드러나고. 뭐여 대체. 폴리아모리같은 건가 싶게. 여튼 이런 부분 역시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라면 로맨스의 자리가 그렇게 낮을 건 뭔가 비쭉대는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 감정을 채 숨기지 못하고 추스르는게 뭔지 모를때 감정대로 지르다가 파탄난 관계 속에 주변과의 상황으로 인해 더 자기 자신만 악화일로를 걷는 경험을 하다보면, 그런 과정을 모른 척 나만 못본 척 하고 넘어가면 없던 일이 될 수 있을거라 여기며 다시 힘든 과정과 후회를 겪지 않으려고 파고들어가 외면하게 되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역시 그렇게 되면 그 인생을 살아야 하는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으니까. 지금 아프다고 외면하면 나중엔 후벼파며 더 아프게 된다는 걸 모르지 않아야 한다. 어쩌면 말이 쉽긴 한데.
그리고 왜 대부분의 영화에서 부부들은 다들 그렇게 같이 살면서 낡아져 버릴까. 서로가 서로만 바라보면 더 낡아져서 외도를 하는 양 그리는데, 그게 비혼족을 키우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는거라 본다. 법으로 10년만 부부로 살게 해놔야 불륜 서사 좀 줄어들까. 오래된 관계면 거기서 이미 80%는 불륜이 문제로 등장한다. 지겹고 뻔한 인간의 감정과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아이를 잃은 채 버석거리는 부부. 지루하다.
아메바같이 구는 남편에게 이제서야 깊은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던 아내를 굳이 누가봐도 뻥인 듯한 일정 핑계로 피하는 남편을 보며 운수좋은 날의 김첨지가 떠올랐다. 역시 옘병스러운 인간들은 하는 짓도 비슷하다. 2년이나 지나고 무너진 남의 동네가서 아내가 보고싶다고 우는데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냐며 우는 오라질 김첨지의 모습이 역시 오버랩된다. 감독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닌데 분명 읽어보고 영감을 받은게 틀림없어.
근데 그 아내의 외도 문제도, 사실 그렇게 아파하고 미스테리어스하게 여겨질 건 아니라는게 극중 연극대사를 통해 드러나고 여성 운전기사가 그냥 그런 사람인 거다 그 자체를 니가 못받아들이는 거 아니냐 할때 너무 반가웠다. 뭐 외도가 꼭 정신적인 문제와 상대방과의 문제로 인한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그런 성향의 사람인 거지 상대편인 상처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잘못까지 자신의 잘못인양 반성할 필요는 없는 거다. 인간을 단 둘만의 관계로 묶어놓는 제도가 오히려 숨막힐 수도 있지. 거기서 좀 일탈해 보고 싶을 수도 있지. 단지 상대방이 배신으로 받아들이면 그게 문제가 되는건데 알고도 모른 척 외면하고 있던 남편은 살아남아 버티는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반대 역할이었다면 아내가 살아있겠지. 궁금한 건, 아내의 전생 장어 설정은 뭔가와, 빈집털이범 눈을 찔러 죽였댔는데 그거 녹내장 걸린 남편을 은유한 거라면 남편이 짝사랑 상대가 아니라 빈집털이범이었던 건가...아니면 불륜남의 창작인가. 그 정도로 의미를 알아챌 만하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기억력이 너무 좋은것도 의심스럽고...배우 배역이니까 가능한가. 아무리봐도 빈집털이범은 너인거 같긴한데. 이런 식으로 극 중간에 삽입된 이야기 해석 좀 극중에서 시원하게 해주고 끝내는 영화를 찾고만 싶다.
극중 연극대사를 통해 영화 인물들이 자신들이 맡은 삶의 역할에 필요한 것들을 배워나간다. 희망이 없어도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 단순한 이유를 계속 읊어준다. 그리고 놀랍게도, 여러 나라의 말들로 연극이 이루어진다. 거기에 언어의 형식이 수어까지 포함되어 한 공연내에 녹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이제 새로운 바벨탑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젠 신이 어떤 벌을 내릴 수 있을까. 일본 영화이면서 특히나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설정한 걸 볼 때, 한창 우익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텐데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 걸 보면 병신들은 넷상에서만 존재했던 것인가 싶기도 하고. 하루키 원작 영향인가. 그 사람이 우익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를 내긴 하니까. 하긴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인세를 보면 미워하는 척하기도 쉽지 않을 거다.
젊은 여성 운전사. 이 인물의 삶과 태도가 너무 좋았다. 옆에 있으면 앉아주고 싶고 도닥여 주고 싶은, 그런데 그게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 태도마저 안쓰러웠다.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고 삶에 대해 홀로 서는 게 뭔지를 일찍부터 깨닫고야 만 사람이 정직하고 외롭게 사는 모습이 연민을 자아내게 하니까. 그녀가 마지막에 보여준 새로운 미래와 가능성은...한국인가?ㅎㅎㅎ
남녀 주인공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듯한 태도와 문제는 사실 너무 흔하고 뻔하고....하루키의 원작이라는 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더욱 크게 다가오는 점은 희망없는 삶을 묵묵히 살아내야만 하고 거기에 일을 하며 삶이 다하기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삶에 대한 위엄있는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체홉의 바냐아저씨 를 읽어봐야하는 문제에 더 가까운 거 같기도 하지만 영화로 그렇게 그려냈다는게 중요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