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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mp Jun 09. 2022

[책] 저주토끼

정보라, 아작

여기저기서 얻어듣는게 많아져서 이 책에 대한 정보도 들었었다. 후보에 올랐다는 상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많이 떠들고 있는거 보니 좋은 상이겠지 싶다. 한강이 받았을때도 꽤나 난리였던걸 생각하면. 거기 기준이 어떤건지 모르겠지만 책을 보고는 상을 받기는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치를 판단해서가 아니라, 여기서 나타내는 은유들이 쉽게 이해받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되었다. 

단편 여러 편이라 한 가지 주제로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인간들이 인외의 존재들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점이었다. 이상한 존재들이 문제의 중심에 있는데 거기에 은유의 초점을 맞추면서 보니, 야담이 많이 생각난다. 야담에서도 기이한 종류들. 야담 중 기이담은 밑도끝도 없어서 읽다보면 짜증을 유발한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다가 은유에 대해 생각한 부분이 들어맞는 현실의 상황을 맞딱뜨리면 퀴즈를 푼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런 경험조차 드문 경우다. 

이 이야기의 은유들도 처음엔 그랬다. 밑도끝도 없네 싶다가 어디서 들어본 옛이야기 같네 싶다가 뭔가 비위가 상하게도 했다가 화를 막 돋구기도 한다. 화를 돋구는 건 주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 쪽이고. 그런데 그들의 하나같이 범죄에 가까운 행동에 그걸 감내해야하는 존재들은 인외의 존재를 형성하거나 북돋우면서 결국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돌파해 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이야기들이 허무해지고 슬퍼지지만 어떻게든 결론을 보여주기 때문에 데스노트의 존재를 생각나게 하는 시원함이 있다. 

표제작인 저주토끼는 잔혹동화같다. 새삼 토끼똥의 무서움을 알았다. 나름 정의구현의 저주였지만 우리의 전통은 정의구현을 사람이 하는 걸 받아주지 않는다. 저주에 원인이 있고 원인을 바로잡기 위해서인데도 저주라는 행위 자체로 벌하는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나. 범죄를 당하는 건 당하는 네 탓이지만 그에 대한 응징은 네가 하면 안된단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지옥이라는 게 가설 아니지 않을까.

머리는 어후, 이거 막 읽은 후로 화장실 가기 좀 거북했다. 메스껍고. 인간의 배설물이 인간을 보잘것 없이 만드는 것 같다고 종종 느끼고는 했는데(?) 작가도 그걸 어느 땐가 느낀거 아닐까. 인간이 내뱉는 것들이 그 인간을 규정한다고 여기는 게 맞는 것일지도. 이 작품의 힌트를 김성모 화백의 그저 하루하루 똥만드는 기계일 뿐이지 라는 희대의 대사에서 얻은 것일수도 있다. 여성의 여성스러움을 규정하는 삶에 대해 욕하고 싶은 기분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차가운 손가락은 오래 전에 읽은 웹툰 죽음에 관하여가 생각났다. 주인공이 결국 나쁜 여성..이었던 거 같은데. 내 잘못을 죽음 앞에서 그렇게 되돌려받고 싶지 않다. 잘 살아야겠다.

몸하다는 읽으면서 유일하게 빵터졌다. 생리가 그치질 않아서 병원에서 처방해준 피임약을 먹고 있었는데 임신을 했단다. 너무 태연하게 그 부분이 나오는데 아주 오래 웃겼다. 근데 남편이 없어서 불안정하다며 남편이 되어줄 사람을 찾아오란다. 아무리 선을 봐도 남편을 찾지 못해 신문에 광고까지 냈다. 결과는 추잡한 경험들로 이어졌다. 내게는 내내 웃기는 이야기였다. 임신이, 결혼이, 출산이...그런 거였다. 혼란스러워 하면서 상황에 휩쓸리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와중에도 최선을 다해서 더 안타깝고. 나같았음 배 갈랐어 라며 답답해하고.

안녕, 내사랑은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나름 sf였다. 기계가 낡아져 새로운 기계에게로 옮겨가는 주인의 사랑이, 동기화된 구기계와 새기계의 연합으로 거부되며 인간 주인의 존재를 없애는 것으로 그 사랑에 스스로 안녕을 고한다. 낡은 건 제때 버려야 했다. 동기화를 시키긴 왜 시키나. 새 술은 새 부대에. 옛 말 틀린게 없다는 걸 미래 시대에도 알게 해줘서 고전은 계속될 거 같다는 희망을 줬다. 근대 이거 새삼 모순적인 속담이다.   

덪 역시 저주토끼처럼 황금여우가 등장하고 있어서인지 잔혹동화같다. 황금거위와 비슷한 신세와 과정을 보여주는데 여우의 복수가 처절해서 마음에 든다. 대충 벌내리고 끝내지 않는 디테일함. 

흉터는 가장 읽기 힘들었다. 분량이 가장 많아서도 있었지만 재물 아이의 인간으로서의 삶에 너무 화가나서. 근데 그조차 새로운 분노가 아니다. 최근까지도 현실에서 신안염전노예 이런 존재가 엄연히 있었으니. 그래도 끝내 읽기를 잘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작가의 형벌은 절대 대충이 없다. 다 죽는거야 그냥. 속이 시원하게. 다 자란 아이가 다시 살아가는데 있어 거칠것이 없을 거다. 마치 영화 매드맥스의 맥스같다. 뭐 트라우마는 좀 어쩔 수 없겠지만.

즐거운 나의 집은 인터넷 괴담같았다. 역시 고구마같은 남편을 어떻게 처치해야하나 내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이다의 단비가 장난이 아니다. 아이가 데스노트 그 자체다. 단지 그녀의 삶이 계속 내내 행복할지는 좀 걱정되지만.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는 내가 좋아라하는 스팀펑크 분위기였다. 왠만해서 좋게 나오는 법이 없는 남자놈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비껴가질 않네. 공주의 사막횡단 투혼이 인상적이다. 도망쳤다면 만나지 못했을 천국을 당당히 헤쳐나가 만났는데 그마저도 평범한 삶을 찾으며 뒤로 미루는게 공주가 아니라 제왕감이다.

재회에는 폴란드가 나온다. 예전에 김광균의 폴란드 망명정부 어쩌고 하는 시가 주로 폴란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는데 최근엔 레반도프스키....얘는 이번시즌에 못나가면 어쩌려고 갑자기 입을 그렇게 털지, 바르셀로나 돈도 없다는데. 폴란드인으로써 독일에 대한 억누르던 분노가 있었나-가 생각이 나긴 한다지만 그 인물로 인해 이 나라에 딱히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최근엔 우크라이나를 돕는 용감한 나라. 여튼 부모 잘못만나 고생하는 한국 고학생이 변태 폴란드 남성을 만났는데 둘다 귀신을 본다. 재회를 했는데...한쪽은 그 사이 귀신이 된 거 같은데...뭐 둘 다 인두껍을 쓴 부모로 인해 고생했는데 너희들끼리 서로를 이해한다는데, 순수하고 아름다우면 귀신인들 어떠하리. 사람탈을 쓴 사람인지 뭔지 모를 것들보다 나을지도. 

머리와 흉터를 읽으며 괴로웠기 때문에 좋은 책으로 인식되지 않을 거 같았지만, 엣이야기같은 형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내용과 괴로움의 찌꺼기를 남겨주지 않는 결말 덕에 마지막에 가서 이 책은 내게 좋은 책이 됐다. 작가는 쓸쓸하고 외로운 이야기라고 했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했는데 내 느낌은 쓸쓸함으로 가 닿지 않았다. 작가는 아마 본인이 느끼는 것보다 긍정적인 인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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