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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SYKOO Feb 16. 2021

점심을 먹다 외할머니를 만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오후 3시, 광화문의 오래된 식당 골목. 


10평 남짓 반지하 공간에 오랜세월 자리잡고 있는 유명 김치찌게 식당 문을 열자 

차를 마시며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던 식당 아주머니들의 말소리가 멈춰섰다.


'어서오세요'


식당 구석 한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김치찌게와 계란말이를 시켰다. 

투박하게 썰어진 김치와 큰 비곗덩이가 달린 돼지고기가 뒤섞인 김치찌게가 푹푹 익어가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귀로는 들려오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런데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주머니들의 그 친근한 사투리가 어딘지 낯설지가 않다.  


식당에서 두런두런 피어오르는 아주머니들의 정겨운 충청도 사투리는 어린시절 나의 여름방학이었던, 유일한 낙원이었던 포도의 고장인 나의 외가 마을에 온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는 교차하는 세 명의 충청도 사투리 속에서 나는 우리 외할머니를 만났다.


"뭐-랴~", "기여~?" 하는 추임세하며 맛있게 드시라며 내게 음식들을 건넬때도, 계산을 할 때도 감사하다며 진심으로 따뜻한 마음씨가 꽉꽉 눌러 담긴 한마디 한마디가 나로하여금 지지난해 늦여름 먼길을 떠나신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아직도 내 노트북 바탕화면 오른쪽 끝에는 장미꽃 앞에 서서 웃고 계시는, 

논과 밭일에 검게 그을린 시골 아낙네의 그을린 피부 사이로 하얀 치아가 다 들어나게 활짝 웃고계신, 

소리없이 활짝 웃기만하던 그 순박한 얼굴의 나의 박도순 여사님의 사진이 그 자리에 언제나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 부터, 나는 할머니가 나를 부르시던 목소리를 잊지 않으려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할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상기하고 또 상기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렇게 한참을 할머니를 내 맘 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더랬다. 


밭과 논에서, 마을의 평상에 앉아서, 동네의 길을 걷다 마주친 동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시며, 그렇게 수줍은듯 소리없는 미소를 지으며 오후시간을 보내셨던 외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운. 


오늘, 그리운 마음이 내내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그런 오후를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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