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May 14. 2024

기술·가정 시간에 배웠던 것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

7차 교육과정은 비교적 신식이었지만, 그 사상이 90년대 어디쯤에 머물러 있었다.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세상 모든 것에도 가속도가 붙는 기분이었다. 국어, 수학, 영어, 역사 같은 과목들은 시대의 때를 조금 덜 타는 듯도 보였으나, 기술·가정 같은 과목의 교과서 내용은 받는 즉시 낡아있었다.


흔히 '기가'라고 불리던 기술·가정 수업은 유독 따분했다. 몇몇 선생님들의 의욕적인 실습수업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나는 내가 배우는 것들이 이미 별 쓸모없는 지식이며, 앞으로 더더욱 그러할 것이라 짐작했다. 실제로 그랬다.


기술 시간에 허브의 원리라든지, 여러 가지 공학적인 기초 지식을 배운 것이 기억난다. 따분한 표정의 노선생님이셨다. 오로지 시험을 위한 일방적 강의식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의욕 없이 설명했다는 장면 외에 지금 남은 것은 없다. 집에 무엇이 고장 나면 스스로 고쳐야 하지 않겠냐고, '남자'라면 비상시에 본네트를 열어서 자동차를 고칠 줄 알아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지만. 유튜브와 긴급출동 서비스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남자'가 되는 길은 어쩐지 더 쉬워졌다.


가정 시간도 몰입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90년대 어디쯤의 따분한 라이프스타일을 때늦은 타이밍에 배우고 있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바느질로 파자마를 만든다든가, 퀼트 공예를 해보는 일이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피상적으로 느껴졌다. 레스토랑에서 포크를 사용하는 법, 한복의 구성요소별 명칭, 감동 없는 성교육 등... 교과서의 구성부터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촌스러워서 멀리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인테리어와 관련된 파트였다. "응접실을 꾸미는 법" 같은 내용이 있었는데, 무슨 서양 교과서를 번역한 듯했다. 나를 포함하여 내 친구들 중 누구도 '응접실'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고, 응접실이라는 공간을 따로 구비하고 꾸며놓은 집도 없었다. 별도의 '응접'공간에서 누군가를 '응접'한다는 개념도, 헐리우드 영화의 단독주택에나 어울리는 말 같았다.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나는 데면데면 수업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살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 지식들이 빠르게 낡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이 빠르게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를 통해 응접실에 대해 배운, 나와 같은 90년대 초반생들은 어느새 30대가 되었다. 지금 와서 둘러보면, 7차 교육과정에서 당연하듯 말하던 그 모든 것들이 너무도 달라진 기분이다. 연애도 결혼도, 4인 가족도, 출산도, 이제는 결코 평범하지가 않다.


기술의 발전으로 '기술' 시간에 배운 허브의 원리, 베어링과 기어에 대한 지식들은 필요 없어졌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가정' 시간에 배운 여러 지식들도 무의미해졌다. 학생들의 전인적(全人的)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 생각했던, 그래서 편찬 위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 교과서 내용들은 2024년에 별로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내프킨' 사용하는 법. 같은 것을 알려주시던 가정 과목 선생님은 정년퇴직하셨을 테지. 스승의 날을 앞두고 내가 배운 것들을 어렴풋이 떠올려보다가 글을 쓴다. 구닥다리 교과서를 탓하거나 지루했던 수업시간을 푸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단지,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고작 1인분의 애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