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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Oct 26. 2024

어휴, 잘 살기 힘들다

잘 산다는 게 뭘까.


북극해의 플랑크톤을 떠올려 본다. 그에게 잘 산다는 것은 존재 그 자체겠다. 뜻 없이 바닷속을 부유하는 것이 그의 모든 일과일 것이다. 심플한 자세로 하루종일 광합성을 하는 것. 그 외에는 어떤 욕심도 없다. 극광이나 달빛과 같은 미약한 빛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하루치의 에너지를 만들고 소비하다가 그의 삶은 끝이 난다.


반면 나의 삶은 어떠한가. 나를 정의하는 모든 자세 속에 책임이 있다. 어엿한 성인으로, 누군가의 자식으로, 남자친구로, 형제로, 친구로 해야 할 몫이 있다. 직업인으로서도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야 한다.


잘하고 있을까? 잘하고 있을 리가. 어른스럽게 행동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효도를 하면서, 다정하게 연애하면서, 형제를 챙기면서, 친구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이. 회사에서는 일잘러로 1인분까지 끄떡없이 해낸다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그 모든 역할에서 조금씩 펑크를 내면서, 그러나 간신히 침몰하지는 않으면서 나는 삶이라는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다.


세상은 잠시도 멈춰있지 않는다. 빅테크 기업의 혁신과, AI, 자율주행 같은 기술들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뭐가 또 나오고 또 개발되고… 쉴 새 없는 발전은 멀미를 유발한다. 세계의 동향이 어떻고, 정치권이 어떻고, 업계 동향이 어떻고 하는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도 나는 허우적대고 있다.


정신적으로 어떤 경지에 오르는 것도 아득한 일이지만, 물질적인 것들을 갖추는 것에도 힘써야 한다. 집이든 차든, 옷이든, 전자기기든 크게 욕심이 없는 편인데도 필요가 차고 넘친다. 가지고 싶다고 발버둥 치거나, 가질 거라고 혼자 이를 악문다거나 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초연해지지도 않는다. 요즘은 누구를 만나도 어느 정도는 돈 얘기를 한다.


아무튼 나는 자주자주 그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다. 모든 역할에서 훌륭한 평가를 받고 싶고, 세상의 흐름에 순방향으로 올라타고 싶고, 풍족하게 누리고 싶다. 잘살고 싶다.


그러다가 확 고꾸라지는 어떤 날은, 북극해의 플랑크톤이 되어 먼바다를 떠돌다가, 죽는다는 실감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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