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이야기처럼 눈물 한 방울이 묘약이 되더라
식이장애 상담 이야기
저는 두 번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생일에 한 번, 상담실에서 한 번.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절 살려주신 분은 상담실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전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생님과의 상담은 스무 살 가을에 시작해서 스물한 살 겨울에 끝났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식이장애를 고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증상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그다음 주에는 다시 심해지고 다시 심해지고......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과 영영 이 길을 헤맬 것 같은 기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어요.
상황이 길어지니 너무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은 새벽에 혼자 길가에 앉아있다가 저 차에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다음날 상담실에 달려가서 그 이야기를 하니,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이제는 부모님께 알리고 입원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동안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는데 제 병이 상담실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하셨나 봐요.
선생님이 나를 포기하시는 걸까, 내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가, 부모님에게 이 병을 알릴 수 있을까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저도 더 이상 제가 감당이 되지 않아 입원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부모님께 도저히 얼굴 보고는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고 편지를 써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제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쓰다 보니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커가면서 혼자 간직했던 상처들, 알면서 모른 척했던 많은 일들, 편지에 털어놓고 보니 내가 참 많이 아파했었구나. 상처가 된 순간들을 상처인 줄도 모르고 지나가려고 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상처도 식욕과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자꾸 억누르면 어느 순간 한꺼번에 다 터져버린다는 점, 그때그때 해결해줘야 탈이 없다는 점에서요. 부모님께 편지를 쓴 후에 선생님께도 편지를 썼어요. 제가 평생 아무한테도 털어놓지 않았던 아팠던 순간들, 나에 관한 자책들, 바람들, 수치심, 슬픔, 두려움 전부 끌어다 쓰고 나니 여러 장이 되었어요.
일주일 동안 부모님께 쓴 편지를 들고 있다가 결국 전달하지 못하고 선생님께 갔어요. 선생님께 제 아픈 순간들을 고백하는 편지를 드렸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우셨어요.
제 편지를 읽다가 제 아픔을 보고 우셨어요. 그걸 보고 저도 울었어요. 그 장면이 잊히지가 않아요. 누군가 나를 위해 그렇게 울어준 적이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제 병이 나았어요. 그날로 바로 구토와 폭식 증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날이 제 치료의 열쇠였다고 생각해요. 그날 선생님이 울어주셔서 제가 나았어요. 입원 직전까지 갔던 극심했던 증상이 그 날 이후로 힘을 못쓰게 되었고 증상이 올라와도 강도나 횟수가 줄어들면서 결국 그 해 겨울에 저는 상담실과 이별할 수 있었어요.
병을 고치기 위해 읽었던 책들, 정신질환 의사 선생님의 유튜브 강의들, 식이장애 카페에서 얻은 응원과 자조 모임 모두 제 생각을 고치고 행동으로 이어가려 노력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지만 선생님의 눈물만큼 큰 충격을 주진 못했어요.
애니메이션에서 죽어가는 캐릭터를 보며 상대가 눈물을 떨어트리면 그 눈물이 환하게 빛나면서 죽어가던 캐릭터가 살아나잖아요. 저는 이제 그 장면을 믿어요. 그 장면은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허구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의 통찰이 담겨 내려오는 장면이었어요.
증상이 다 나아서 상담실과 이별할 때 선생님께 크리스마스 찻잔을 드렸어요. 찻잔을 고르면서 무척 설레고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는 상담실을 한 번도 찾지 않았어요. 상담을 종료한 이후로는 한 번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나았기도 하고 선생님께 부담이 될까 봐 그동안 신세 진 것만으로 감사하고 죄송해서 찾지 못했습니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늘 떠올리며 감사해한다는 걸 선생님은 아실까요? 사람 하나 살리신 선생님께서 그에 맞는 복만 받으시며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