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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시 Feb 15. 2022

세계와 세계 사이의 숲

길을 잃어버려도 괜찮아요

기독교 관련 저술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국의 작가 C. S. 루이스의 대표작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의 1 <마법사의 조카>에는 "세계와 세계 사이의 " 등장한다. 어린아이에 불과한 주인공들은  속의 나무들이 각기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실사 영화로 제작되어  사랑을 받았던 나니아 연대기 2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세계대전을 피해 피난  저택에서 주인공 아이들은  장롱을 통해 나니아라는 수수께끼의 세계로 이동한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이 장롱은 저택의 주인인 디고리가 숲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어렸을  영화에서  반인반수의 파우누스와 어린 루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장면의 놀라움을 아직도 가슴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IIBF B동에서 나오면서

숲이란 항상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이 된다. 끝없이 펼쳐진 나무들의 무리 사이로 이어지는 길들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알지 못했던 곳에 닿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마치 들어가 보지 않고는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듯이, 지평선을 따라 좁아드는 길에 발을 들이지 않고서는 그 세계를 조금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필자가 2년 동안 공부한 터키의 앙카라에 위치한 중동공과대학교에도 상당한 규모의 숲이 있었다. 사실 앙카라는 대부분의 터키의 자연환경이 그렇듯, 척박하고 건조한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풀이나 나무가 자라기 매우 어려운 환경을 가지고 있다. 중동공과대학교의 부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흙과 돌 밖에 없는 황량하고 건조한 땅에 숲을 조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중동공과대학교의 옛 모습 (1950년대)

중동공과대학교는 터키 수도 앙카라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성장하면서 캠퍼스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대규모 식수사업을 수년에 걸쳐 진행하였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캠퍼스에 나무를 심는 터키인들

중동공과대학교의 숲은 성장을 거듭하여 앙카라에서 가장 큰 숲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앙카라 도심보다 훨씬 큰 규모의 광야를 거대한 자연공원으로 바꾸어놓게 되었다.

중동공과대학교의 상징, 과학의 나무
교내 작은 공원에서 독서하기

숲은 필자에게 사색의 시간을, 여유를, 문제를 해결할 자신감을 주었다. 매 등교할 때마다 굳이 교내 버스 "링"을 타지 않고 굳이 20분이나 걸어서 강의동까지 걸어갔던 이유는 그 시간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핸드폰도 인터넷도 필요 없었다. 계절과 함께 변해가는 숲을 지나며 나 역시 성장하고 달라졌으리라 믿는다.

교내 순환버스 "링"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는 저 숲 너머에 잔뜩 남아있을 것이다. 스스로 그 길에 발을 들여야만 우리는 그 세계와 맞닿을 수 있을 것이다. 보지 못한 것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우리는 현실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중동공대 숲의 에이미르 호수

나의 터키 유학도 그러했다. 누군가 왜 하필이면 터키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마법사의 조카>의 주인공 디고리와 폴리처럼 세계와 세계 사이의 숲에서 방황 끝에 새로운 세계를 찾아 뛰어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제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방황할 때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숲은 언제나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터. 우리가 무심코 보낸 시간 동안 또 다른 세계가 어디선가 자라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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