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뜨거운 새해를 기다리며
성탄절을 앞두고 눈이 오기를 기대했던 어릴 적의 나, 자고 일어나면 문 앞에 작은 선물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며 산타 클로스는 분명 존재한다고 믿었던 나. 한번은 밤을 새서 산타의 존재를 확인하고 말겠다고 버텨봤지만 그날은 산타가 오지 않았다. 실망스러워서 그냥 잠들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문 밖에 선물이 놓여 있는 것 아닌가! 어렸던 내 잔재주를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산타는 똑똑했나 보다. 멍청한 내 동생은 부모님 앞에서 산타가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그날로 산타는 더 이상 우리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나 잔인한 것이었다. 조금은 순수한 척 연기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이 낯선 터키 땅에서 두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또 이 크리스마스는 터키에서 맞는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터키에 크리스마스가 없다는 걸 알고 얼마나 슬펐던지, 온 세상 가득한 크리스마스 캐롤과 꺼지지 않는 불빛들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예수가 잊혀져 버린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 클로스는 새해를 기념하는 장식물들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교회들은 사회적 감시를 받고 있으니 대대적인 행사를 할 수도 없어 소소하게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것이 고작이다.
하필이면 나는 2018년의 12월 25일에 기말 발표를 하고 기말 시험 하나를 보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면 이미 저녁이 되어 버릴 것이었다. 앙카라 국제교회는 올해 크리스마스 행사를 주일에 하고 따로 성탄절 당일에는 아무런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나는 기타를 연주하며 행사에 조금이나마 노력을 보탰다. 그래도 이 먼 나라에서 예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여전히 크리스마스 당일 시험과 발표가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발표는 신자유주의 시대 권위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이 발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에 맞추어 조금은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내용으로 꾸며 보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정부에 맞섰던 100만의 촛불항쟁을 소개하기 위해 세월호 추모영상과 촛불시위 현장을 다룬 외신보도를 보여주었다.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운 일반시민들의 싸움, 우리들의 역사 속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발표를 마치고 교수님의 칭찬을 듣고서 마저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나, 갑자기 어느덧 어둑해진 하늘 위에서 눈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캠퍼스 전체가 함박눈으로 가득해졌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나에게 하얀 성탄절을 허락한 하나님은, 실망한 나를 위해 기도한 내 친구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어주신 건지, 앙카라에 폭설이 내려 다음날 앙카라 전역의 학교들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평생에 한번도 사본 적 없던 와인 한 병과 살아 있는 소나무를 사서 집에 놓고 예수님을 기억하며 2018년의 성탄절을 보냈다. 새해에는 더욱 기쁜 일들로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기원하며, 아름다운 한해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