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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Apr 22. 2020

나는 내 맘대로 미니멀리스트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도전자라는 단어를 뺄 수 없는 이유를 고백하겠다. 나는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다.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 말하면, 그렇다. 나는 짐이 무지 많다. 거기에 깔끔한 성격도 못되며 여전히 쇼핑을 사랑한다. 불편함보다는 편리함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기꺼이 소비한다. 얼마 전 내가 미니멀 라이프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인이 우리 집에 방문했다. 5년 만에 우리 집을 찾은 그는 "사진을 찍어 제보해야겠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짐을 안고 살면서 온라인으로만 미니멀리스트 `시늉`을 내는 것 아니냐며 놀렸다.


둘째 출산 후 방문했던 산후조리사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아기가 둘이 있는 집이라 역시 물건이 많네요."


이러한 평가를 들을 때마다 조금은 의기소침해진다. 물건에 치이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집엔 무엇인가 가득하다. 나 역시 남편과 장난처럼 "나는 대국민(?) 사기꾼"이라고 말하며 종종 웃곤 한다. 나조차도 우리 집은 통상적인 미니멀리스트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도 구차한 변명을 덧붙일 테니 들어주시라. 육아를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둘만 살던 우리의 신혼집을 기억하는 지인의 입장에서는 아기용품이 널려(!) 있는 지금 집이 지나치게 복잡 해 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는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다! 저출산 국가에 이만 한 애국자가 어디 있나. 조금 봐달라(하, 정말 막무가내다…죄송합니다)!


자칭 대국민 사기꾼 주제에 이러한 고백과 변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세상에는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싶고 야심 차게 도전도 해보지만, 육아나 직업, 아니면 그 어떤 처지 때문에 쉽사리 환경이 바뀌지 않아 좌절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본다. 버리고 또 버려도 여전히 복잡한 집을 보며 회의감을 느끼고 결국은 도전에 실패한 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요요 현상을 겪는다. 여기에서의 요요는 다이어트와 마찬가지여서, 괜히 잔뜩 물건을 버리고 소비 욕구를 제한해놓은 통에 고삐가 풀리면 오히려 이전에 비해 더 맥시멀 해진다.


특히 두렵고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이유로 미니멀 라이프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집을 물건에서 구출해내기 어렵고, `미니멀리스트`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나오는 깔끔한 이미지의 집 근처에도 가지 못해 실망하고 있는 와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까지 받았을 때 도전에 대한 좌절감은 자존감마저 깎아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분들에게 나는 여전히 내가 `미니멀리스트`를 꿈꾸고 있다고 당당히 말해주고 싶다. 나는 1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니멀 하우스`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 중이다. 집 외관은 과거에 비해 아주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버릴 수 있는 것은 열심히 버렸고 지금도 비우고 있지만 다른 짐들이 끊임없이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는 동안 집은 커지지 않았고 가족은 한 명 더 늘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육아 템`들은 30평 아파트를 10평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아무리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한다고 해도 `국민` 육아 템을 몽땅 쓰레기 통에 넣을 수는 없다. 아이가 커가면서 꺼내놓아야 하는 물건들이 새로 생겨나고 공간은 비워도 금세 다른 물건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나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더 이상 `핫딜`에 목숨 걸지 않는다. 소모품이더라도 대량 구매를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의 소비를 추구한다. 옷이나 신발을 구입할 때는 옷장의 남은 공간을 고려하고 있으며, 유통기한 내 먹지 못할 만큼의 음식은 구입하지 않으려 한다.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물건에는 큰 미련을 두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얻은 습관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달라져야만 미니멀리스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은 언젠가는 변하기 마련이다. 습관과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눈에 뚜렷이 보이는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괜찮다. 적어도 내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고 더욱더 달라지겠다는 의지를 잃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나에게도, 내 글을 읽어주는 여러분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조바심을 내지 말고 충분히 나만의 속도를 즐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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