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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Aug 17. 2021

이사는 미니멀라이프보다 강력하다

이사와 미니멀라이프의 공통점 찾기

"어?세제가 벌써 떨어져가네. 어디보자…. 예전에 샀지만 번거로워 쓰다 만 가루세제를 마저 써야겠다."

"헉 젖병세정제도 다 썼구만. 어차피 친환경 세제니 그냥 주방 세제로 닦지 뭐."

"샴푸 새로 사야 하는데…. 두 개 사면 쿠폰할인이 되네? 흠…, 그래도 하나만 사자."


미니멀라이프 도전자의 흔한 하루?처럼 보이지만 나는 지금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늘상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고 있는 나는 쇼핑을 할 때마다 지금과 비슷한 고민에 부딪친다.그리고 최대한 '지금 필요한 것만' 사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에도, 세 번 중 한 번은 대량 구매와 덤, 묶음 할인 등의 유혹에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나는 같은 상황에서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미니멀라이프라는 목표에 이사라는 동기가 하나 더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동기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강력했다.




핫딜을 마주할 때마다 늘 눈빛이 흔들리는 나지만 이사라는 거사를 앞두고는 큰 변화가 생겼다. 굳이 새집에 가서 쓸 소모품을 지금 사둘 필요가 있겠냐는 마음이 핫딜의 유혹을 넘어서게 했다(이 마음 한켠에는 새집에서 쓸 물건은 새집에 가서 사겠다는 강력한 잠재 구매 의지도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앞서 한 달간 괴로운 투병생활(!)을 하며 비자발적인 냉장고 비우기를 시도했다면, 이번에는 이사 덕분에 또 한 번 반 강제적 미니멀라이프를 실행 중이다.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뿐 아니라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거나 비우는 데도 보다 쿨해졌다. 한 집에서 4년 가까이 살면서 쌓인 짐은 생각보다 많았다. 미니멀라이프 도전자로서 꾸준히 조금씩, 때로는 왕창 물건들을 줄여나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물건들은 늘 존재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전 집에서 고이 싸들고 온 짐이기도 하다. 이제 새로운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지금의 집에서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외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직장 선배가 1년간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데 그제서야 풀지도 않은 짐 박스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 있다. 이사가 아니라 연수였기에 반드시 필요한 짐을 추리고 추려 바다 건너까지 챙겨갔을 텐데도 단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사 이야기를 하는 김에 유명 미니멀리스트 조슈아 밀즈 필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의 '짐싸기 파티'를 소개해 보려 한다. 짐싸기 파티란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어 하루 만에 모든 짐을 싸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모든 물건을 상자에 담는다. 칫솔이나 주방용품처럼 당장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빼놓지 않고 상자에 담거나 포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 일주일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이후 쌓여 있는 짐을 모두 버리거나, 기부하거나, 판다.


쓰무라 기쿠코의 소설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의 남자 주인공은 상자가 쌓여 있는 방에서 살고 있다. 날이 갈수록 어느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니 상자를 열어볼 마음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한다. 어느 날 상자 하나를 열어보니 영어사전과 오래전에 읽었던 만화, 가끔씩 구입한 경제잡지, 전혀 효과가 없는 마사지 기계 등이 나왔더랬다. 결국 흠, 필요 없는데 하며 어깨를 떨구고는 다시 상자를 닫아버렸다는 소설의 제목만큼 다소 허무한(?!) 에피소드다.


소설 속 이야기는 짐싸기 파티와 비슷하면서도 대조가 되는 이야기 아닐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물건에 둘러싸여 생활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아주 적을 수 있다. 당장 필요한 것은 한 개뿐이지만 몇 개씩 쟁여 놓는 물건들,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 거처를 옮길 때마다 들고 다니지만 정작 찾지 않는 물건들은 사실 지금 필요한 물건이 아닐 것이다.


이고 지고 살아온 물건들을 덜어내고 나니 나는 조금 더 홀가분해졌다. 이사가 다가오면서 느끼는 아쉬움도 함께 덜어내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집은 필요한 물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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