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사우나에 간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사우나에 가면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고는 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에 생긴 습관이다.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때로는 선친이 세신사에게 팁을 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시절 많은 집이 그러했듯이 우리집도 내가 어릴 적에는 부자지간에 목욕탕에 다녔다.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 되어서는 내가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렸던 것 같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혼자 목욕탕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사춘기 소년의 독립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에 대해 아버지도 별 말씀은 없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혼자 목욕탕에 가면 대개 서로 등을 밀어주자고 제안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세신사가 상주하는 동네 목욕탕은 드물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스스로 몸을 닦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중고등 학교 시절에도 가끔 아버지와 목욕탕에 간 적은 있지만 대학 이후에는 같이 간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때 아버지가 어떻게 때를 미시는지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십 대 청춘에게는 그런 문제 말고도 신경 쓸 일이 아주 많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세신사에게 팁을 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팁이라니... 근검절약을 강조하던 우리집에 팁 문화가 있었던가. 팁이라는 것은 호텔에 출입하는 부자들이나 주는 것 아니었던가. 물론 그리 큰 금액이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글을 쓸 때면 주로 이면지를 활용할 정도로 검소하신 아버지가 세신사에게 몸을 맡길 뿐만 아니라 팁까지 주었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대해 곧 잊어버렸다. 세상에는 내가 신경써야 할 일이 여전히 많았다.
돌아가시기 전 입원해 계신 동안 선친의 시중을 들며 당신의 몸을 닦아드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혼자 화장실에 출입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면 사람의 몸은 금세 추레해진다. 남자의 경우 수염이 자라 더욱 초췌해보인다.
면도를 해드리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닦아드리며 문득 아버지가 때밀이에게 팁을 주셨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 그것은 그저 고마움의 표시였을까. 아니면, 열두 살부터 객지를 떠돌며 독립해야 했던 당신이 가장 기본적인 일을 남에게 맡겨야 하는 상태가 된 사실로 인해 스스로에게 든 미안함을 감추려 하신 것일까. 또는, 낯선 땅에 와서 하루 종일 물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안쓰러움의 표현이었을까.
그 생각을 하자 나는 젊은 날 아버지의 등을 더 자주 밀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수건을 빨아 다시 한 번 당신의 몸을 닦아드렸다.
우리집에서 사우나에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다른 식구들은 집에서 샤워만 한다. 하긴 때를 미는 관습이 없는 서양 사람들은 바디워시로 샤워만 하고 사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깨끗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피부과 의사는 때 미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때를 밀면 피부를 보호하는 각질이 제거되어 오히려 가려움증이나 피부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한국 사람이 때를 밀 때의 상쾌한 느낌을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몸의 때를 밀어줄 때의 묘한 쾌감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의 귀족들은 노예가 때를 밀어주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세신사에게 팁을 준 적은 없지만 더 나이가 들어 기운이 없어지면 아버지처럼 팁을 주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과 쇠락한 몸을 깨끗이 닦아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