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음.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족이 해체된 상태라는 것이다. 하긴 그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만 참가 권유를 했을 것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가족이 해체되었기에 역설적으로 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 또한 가족이다. 기훈은 딸을, 상우는 엄마를, 새벽이는 북한에 남겨진 엄마와 보육원에 있는 동생을. 심지어 게임 설계자 노인 오일남 마저 잃어버린 과거의 가족을 그리워한다.
"아저씨. . . 나 집에 가고 싶어. . ." (새벽)
마지막 게임을 남겨 놓고 다쳐 죽음을 목전에 둔 새터민 새벽이가 기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집에 가고 싶어"이다. 새벽이가 상상한 집은 엄마, 동생, 그리고 압록강을 건너다가 총에 맞은 아버지까지 살아 있었던 시절의 집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 형이랑 이러고 놀다 보면 꼭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는데. . . 이젠 아무도 안 부르네." (상우)
한 동네에서 자란 기훈을 찌르면서까지 상금을 차지하려 했던 상우는, 상금을 차지할 것이 확실했던 기훈이 상금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돌아오자 용서를 빌며 역시 집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한다.
"여기야. 예전에 이것과 똑같은 집에 살았어." (오일남)
게임을 설계한 노인 오일남은 젊은 시절 가족과 살던 골목 풍경을 재현하여 잠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한다. 비록 그 시절을 함께 보냈던 아내와 아들은 이미 없지만.
이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이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리고 게임을 하며 신나게 놀고 있으면 밥 먹으러 오라고 나를 부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가 미치는 영향은 가족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돈이 없으면 기훈네처럼 가족이 해체되기 일쑤다. 물리적으로 해체되지 않더라도, 결혼을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커플이라면, 자식을 키우는 것을 투자로 생각하는 부모라면, 그 가족은 이미 기훈과 상우와 새벽이와 오일남이 그리워하는 가족은 아닌 것이다.
가족이 해체되었더라도 연대가 주는 위로를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깐부를 찾게 된다.
깐부. 짝궁. 네 것 내 것 없이 공유하는 사이. 가족이 아닌 사이에 맺는 가족과 같은 사이.
이 드라마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들이 모두 이 깐부와 관계가 있다. 외토리로 남겨진 지영에게 다가가 같은 편이 되자고 제안하는 새벽의 행위, 가족이 철저히 해체되어 상금을 받아 가도 하고픈 것이 하나도 없는 지영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며 새벽이 이기게 해주는 행위, 새벽과 기훈이 서로의 가족을 보살펴주기로 약속하는 행위 등이 모두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깐부는 가족이 해체된 현대인에게 가족을 대신하는 유사 가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연대보다 경쟁으로 더욱 더 내몰리는 현대인에게 가족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이 드라마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일단은.
가족은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가족도 변화한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경쟁사회는 가족 구성원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경쟁의 치열함이 조금 덜한 쌍문동이라는 서울 변두리에 사는 가족마저 그러하다.
기훈이 상금을 가지고 돌아갔을 때 기훈의 어머니는 수술할 시기를 놓쳐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다. 엄마 옆에 누워 기훈이 가만히 하는 말은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에서 이미 짐작했으면서도 참 마음이 아프다.
"엄마, 나 왔어. 엄마 나 돈 벌어 왔어."
수술비를 감당하고도 남을 돈을 벌어 왔지만 엄마에게는 이미 그 돈이 소용 없게 되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지만, 그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면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 기훈이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게임 설계자 노인은 다시 만난 기훈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그 말에서 나는 오히려 사람을 믿고 싶어하는 그의 심리가 읽혔다. 사람을 믿으면 배신당하는 사회, 하지만 믿지 않으면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없는 인간의 모순.
그가 설계한 게임은 어린 시절에 놀던 천진난만한 게임을 가져와 냉혹한 현실 세계의 시각으로 살짝 비틀어 그런 인간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은 참가자들의 모습에서 거울을 보는 듯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가족이라는 허울만 남은 가족이 얼마나 많은가. 나의 가족도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전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나의 깐부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깐부가 되어 주었나.
그 모든 것을 겪고도 기훈은 아직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결국 나이브한 것으로 판명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믿어야 할 이유를 찾게 될 것인가.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