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한우 Jan 14. 2018

안 팔리는 책 위주로 진열합니다

"접객接客"시리즈 네 번째  [서점 빌리지뱅가드  ヴィレッジバンガード]

점포에 들어가면 일단 약간 촌스러운 조명들 아래에서 오타쿠의 성지에서만 난다는 묘한 향기와 함께 도대체 이런 물건을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누구를 위해서 만드는지 잘 모를듯한 형형색색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빌리지뱅가드 오다이바 아쿠아시티점



LED를 사용한 발색을 최고로 중시하는 첨단 signage가 즐비한 요즘에 오렌지색 네온사인으로 가게 이름이 걸려있고, 덕지덕지 노란색 종이에 매직으로 적은 상품설명과 함께 가격이 적혀있다. 물론 한 자 한 자 손으로 적어서 말이다.  

유모차 따위는 절대 끌고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좁은 동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다 보면 바닥부터 쌓아 올려진 가끔 먼지도 좀 쌓여있는 상품들이 보이고, 이 상품들이 키높이를 넘어서 진열되어 있어서 들어왔던 도대체 이 놈의 입구가 어디인가 잠시 헷갈릴 정도인 바람에 낯선 외국에서 일행을 잊어버릴까 봐 서로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이 곳. 



카네다 !!!!  타스케테쿠레에....  

金田 !!! 助けてくれー 

카네다 !! 도와줘- 

애니메이션 AKIRA의 한장면



선반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세기말 폭주족을 그린 유명 에니메이션 AKIRA가 흘러나오고 있다




쪼끄만 모니터에서는 핵폭발이 있은 후의 근미래의 도쿄에서 벌어지는 소년 폭주족들의 세기말적인 스토리를 그리는 유명 애니메이션 AKIRA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고, 나도 모르게 한참을 서서 화면을 보고 있자치면 모니터 밑에 펼쳐져 있는 AKIRA 애니메이션 원작자 오오토모 카츠히로大友克洋 원화집이 자꾸 눈에 꽂힌다. 아... 이거 집어 들면 살 거 같은데 라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만지작 거리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영락없는 아니메 오타쿠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내 발 밑에 테이프로 덧대어진 얼기설기 적혀 있는 글 한 장.  


"요기쯤 서서 책을 읽고 있으면 꽤 지적이고 머리 좋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후후 그짓말.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영문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내 마음. 

그렇다. 이 세상의 쓸데없는 모든 것. exciting bookstore 서점(으로 분류되어 있다) 빌리지뱅가드ヴィレッジバンガード 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오프라인 서점은 근래에 가장 많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대표적인 업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책을 읽지 않고 영상으로 정보를 더 많이 접하게 되는 소비자의 매체환경으로 부터의 위기에서 시작해, 판매채널이 온라인화 되면서 아마존의 급격한 성장, 그리고 e-book으로 대체되는 종이책의 위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서점의 근본적이고 기능적인 역할인 고객에게 책을 소개하고 파는 공간이라는 가치만 제공해서는 소비자의 발길을 더 이상 끌 수 없게 되었다. 


한때, 일본 지하철에서 승객들이 전부 손에 책을 들고 읽는 모습에 "책을 읽는 국민"이라는 명예로운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출판대국이라고 불리는 일본도 1996년 2조 6천5백억 엔을 정점으로 하락, 2014년에는 1조 5천5백억 엔까지 주저앉았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지 아무도 예측을 못하는 암담한 상황이 현실이다.



연도별 일본출판시장 규모


이런 현실 속에서 "서점"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재조명하고, 변해가는 환경에 맞게 바꿔가는 노력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흐름에는 커다랗게 두가지 패턴이 있다. 먼저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은 구매력이 있는 지역에 주로 출점하고 있는, 하이컬쳐high culture의 관점에서 공간 디자인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이슈화에 성공한 "쯔타야蔦屋"이고 반면에 서브컬쳐sub culture의 관점에서 머천다이징적인 공간의 재구성으로 새로운 업태를 창조한 "빌리지뱅가드"이다. 지향점이 다른, 업태만 서로 서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듯이 보이는 두곳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손님에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과 "상품"을 제공하는 전문점specialty store라는 부분은 같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빌리지뱅가드라는 이름은 뉴욕의 한 재즈클럽에서 따온 것으로, 이름에서 풍기는 그대로 "재즈라도 편하게 들으면서 서서 책을 읽다가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사세요"라는 컨셉으로 1986년 일본 나고야시에서 서점으로 출발했다.  1호점이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15분이나 걸리는, 번화가에서는 꽤 먼 곳에 창고를 개조하여 만들어졌는데 창고를 개조하는 바람에 천정이 높은 공간감 있는 인테리어가 나올 수 있었고, 입구 부분이 살짝 높아 플로어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이국적인 공간감으로 그 당시의 서점으로서는 아주 유니크한 인테리어와 시계나 지갑을 진열하는 집기를 당구대를 사용하는 등의 새로운 디스플레이 방식을 선보이면서 그 새로운 정서에 감동하는 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빌리지뱅가드 1호점



이렇듯 음악이나 들으면서 편하게 책도 읽고 재밌는 물건도 사는 빌리지뱅가드의 캐치프레이즈는 "놀며 즐기는 서점 遊べる本屋"이다. 일단 서점으로 업태 분류가 되어있으나 책을 사기 위해서 빌리지뱅가드에 들리는 고객은 매우 드물다. 일본만의 독특한 "서브컬처"가 밑바탕인 다양한 책과 제품, 그리고 컨텐츠가 버무려져서 점포 전체가 이른바 작은 테마파크나 게임센터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웨스트 플로리다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레이 올든 버그가 주장해서 경영학의 한 이론으로도 정립되어 스타벅스가 내세우는 매장 가치와도 연결되어 유명해진 제3의 장소 (the third place)의 개념이 빌리지뱅가드에도 적용이 된다.  회사원의 경우는 제1의 장소는 집이고 제2의 장소는 회사가 되는데, 여기에 제3의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주위의 같은 이슈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혹은 컨텐츠들과 교류하고 단 몇 분이라도 리프레쉬를 할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하는 취향에 맞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그 제3의 장소로서의 빌리지뱅가드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일본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최고의 장소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 이런 빌리지뱅가드의 오모테나시적인 "접객"측면에서의 가치는 무엇일까?  


1. 연상連想 진열 


보통 서점에 가면 분야, 작가, 출판사, 제목 등으로 서가를 질서 정연하게 분리해놓고 고객이 필요에 의해서 검색이나 문의를 한 후 찾아가서 구매하는 철저한 목적구매를 위한 매장 구성을 갖는다. 그 와중에 고객의 주요 동선에 베스트셀러라던가 신간 소개 등의 코너를 심하게 강조해서 진열하는 정도로 충동구매를 유발하는 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마케팅을 한다. 

그러나 빌리지뱅가드는 애초에 베스트셀러나 다른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은 처음부터 진열도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식상하지 않은, 다른 서점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특별한 분야의 테마나 내용의 책을 전시함으로써 컨텐츠의 유니크함을 먼저 확보한다. 애초에 이 책을 사고 싶어 라고  명확한 구매 목적을 갖고 방문한 고객이 상당히 적기 때문에 테마의 신선함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여 고객의 관심을 유도하는 특별한 디스플레이를 한다. 


핵심 컨텐츠를 고객에게 던지고 그 컨텐츠를 중심으로 책, 잡지, 포스터, 기타 출판물, 잡화, 식품 등으로 계속해서 연상되는 제품을 주위에 진열한다. 

예를 들면 여행 코너에는 여행 가이드북을 중심으로 호텔 사진집이나 실제 호텔에서 사용되는 호텔용 전화기(물론 판매용이다)가 진열된다. 그 옆에는 항공회사의 옴니버스 CD나 여행 캐리어, 거기에 비행기 프라모델 까지 있다. 가방에 붙어 있는 커다란 POP에는 "빌리지뱅가드와 함께 세계일주"라고 적혀있다. 이는 단순한 디스플레이라기보다 고객과 벌이는 연상 게임에 가깝다. 



빌리지뱅가드의 한 여행코너 


고객은 이 코너 앞에서 이것저것 뒤적거리면서 여행을 가려고 했던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행복해하고, 관련된 테마의 유머와 위트가 잔뜩 묻어나는 물건이나 책을 보면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몇 초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빌리지뱅가드는 이런 식으로 고객에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자기들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하며 같이 웃고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매장이기도 하다. 


도대체 다른 어떤 서점이 고객에게 이런 순간을 제공할 수 있을까? 


독창적인 pop 


이런 연상 진열에 완성도를 높이는 빌리지뱅가드만의 특별한 접객 요소가 있는데 바로 POP이다. POP는 Point Of Purchase의 약자로 고객 접점에서 광고를 하는 매장 내 수단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흔히 매장에서 보는 종이에 적혀있는 오늘만 특가 라던가 하는 것들을 말한다. 


기껏해야 오늘만 특가 정도밖에 생각이 잘 안나는 이 POP가 빌리지뱅가드에서는 가장 강력한 접객 요소로 작용하는데 그 몇가지를 한번 살펴보자. 


    

책 제목: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 

pop :      마누라!!!    (맞아. 이건 진리) 



우리가 잘 아는 "월리를 찾아라" 

POP: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매일매일 월리를 찾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28살. 

          월리는 몇백 명 찾아냈는데 내 인생은 완전 못 찾고 헤매고 있음 (쯔쯔쯔) 


 



절대 안팔릴것 같은 싸구려 안경들을 줄줄이 걸어놓고 은근 슬쩍 매니아적 취향을 저격하는 문장 하나 

pop : 병맛같은 당신에게 상당히 잘 어울리는 등신같은 안경들을 한번 모아봤습니다.




전세계 어디서나 늘 비상구에서 탈출하고 있는 픽토그램씨를 기억하는가? 거의 모든 위험상황 표지판에 그가 있다. 일본 픽토그램씨 협회에서 발간한 전국의 픽토그램 설명책에 적혀 있는 빌리지뱅가드적인 카피 한줄 

POP : "THE 불사신"  



요즘 첨단 유행의 발신지 인스타그램에 올려달라고 읍소하는 컵누들 티셔츠 입은 마네킹 

POP: "이래도 안올릴꺼야?" 



빌리지뱅가드의 제품들이 하도 재밌는 것들이 많은 바람에 평범한 비닐우산을 꼽아놓고 

POP : "하나도 재미없는 우산 들어왔습니다!!"

 


직원이 대면판매를 하지 않고서도 다양한 내용의 POP로 고객의 웃음과 관심을 유발하고 물건에 손이 가게 하며 이런 POP들을 읽으면서 낄낄거리며 매장을 돌다 맘에 드는 연상 진열대 앞에 서서 이것저것 뒤적이다 보면 한 시간 정도는 훌쩍. 그 어떤 접객 보다고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빌리지뱅가드의 매출 중에 책은 30% 정도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베스트셀러만의 매출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서점에서 팔지 않는 유니크한 책을 중심으로 전시하게 되고 그 책들은 매출의 중심이기보다는 잡화까지 고객을 유도하는 새롭고 강력한 동선이 되는. 


1. 식상하지 않은 유니크한 컨텐츠(책) 

2. 연상 진열과 유머러스한 POP로 호기심의 중심을 잡화로 

3. 매출의 축을 형성 


이것이 새로운 접객을 기반으로 한 빌리지뱅가드 만의 새로운 머천다이징적 비지니스모델의 수익화 공식이다. 


접객이라고 하는 것이 꼭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빌리지뱅가드가 깨 주고 있다. 고객과 공감하는 접객 술은 무궁무진하다. 근래에 한국에 들어가 보면 매장은 너무 훌륭하고 팔고 있는 제품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데 팔고 있는 사람이나 방법이 진부하고 고객과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는 걸 자주 본다. 결국 리테일의 본질은 고객과의 다양한 방법으로의 공감이라는 것을 매장 인테리어에 들이는 정성만큼 고민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빌리지뱅가드가 상장 이후에 성장 위주의 확대 중심 전략에 빠지며 원래 가지고 있던 서브컬처의 유머스러움이 사라지고, 접객의 중심이었던 POP도 점포별로 비슷해지는 매출 성장의 함정에 빠지면서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쯔카다 농장에서도 벌어졌던 양적 성장에 따른 질적 성장의 속도차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유니크한 비지니스들은 기업공개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또 다른 의미에서 시사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