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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Feb 25. 2022

Lewina's 책일기, 책읽기

고영범 <서교동에서 죽다>

그 시절의 나는 어디에서 죽었을까?


'성장소설'이 소설의 한 장르로 당당히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데미안, 수레바퀴 밑, 호밀밭의 파수꾼, 자기 앞의 생, 이런 작품에 빚을 졌다. 또한 미하엘 엔데의 모모,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부코스키의 호밀빵 치즈 샌드위치도 성장소설에서 빼놓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떤 작품들도 성장소설의 범주에 넣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장소설 장르를 좋아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 할 내게 인생 소설의 목록을 나열해 보라면 저 위에 열거한 작품들이 녹음기 버튼을  누른 듯 줄줄 나오는 아이러니는 왜때문일까?


아마도 이런 마음인 게지. 깊숙한 곳에 묻어둔 유년의 기억 따위 파헤치기 싫은데 그래도 들춰보고 싶은, 그 시절의 내가 나약하고 창피해도 끌어안고 싶은, 어둑어둑한 툇마루 끝에서 질질 울던 과거의 내게 갈 수만 있다면 코를 풀어주고 격려해주고 싶은 안타까운 심정, 바로 그런 거 말이다.


성장소설을 읽는 동안엔 자꾸만 작중 인물과 상황에 나를 포갠다. 의도하지 않아도 중첩되고야 만다. 끝끝내 숨기고 싶었던 모멸과 적산가옥 뒷마당의 오래된 우물의 공포까지 열어보게 만든다.


왕년에 전교 1등, 왕년에 영창 피아노 있는 집, 왕년에 엄마가 국민학교 자모회장, 멀리서 보면 금색으로 빛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조악한 칠이 그마저도 군데군데 벗겨진 트로피같은 과거사 뒤에는 먼지가 소복하게 앉은 선반이 있다. 검지손가락으로 지익 그으면 지문을 죄다 가리고도 남을 먼지는 세월의 더께만큼 짙어 풀썩이는 먼지 가루가 재채기를 유발한다. 눈물, 콧물, 침이 뒤섞인 재채기로 휘날린 먼지들이 부유하는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사라질 수 없는 기억과 잊어서는 안되는 추억 사이의 교집합은 얼마나 큰걸까.


어쩌면 나는 그 시절에서 조금도 크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혹은 그 시절 나를 매혹했던 생생한 감정의 편린들이 죄다 사라져버린 것만 같아서 울 수도 없는 기분이 되고만다. 그래, 정말 울고싶을 땐 죽어라 하고 울음이 나오지 않더라고. 어른이라고 불리게 된 어떤 날부터.


수도를 같이 쓰던 시골의 공동 주택, 대문 옆에 있는 한 칸짜리 재래식 변소에선 종종 생명력 질긴 구더기들이 출몰했고, 현충사까지 타고 갔다가 잃어버린 자전거는 아빠가 손수 하늘 색으로 칠해 준 것이었다.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온 어떤 날 대성쇼핑 악세사리 매대에서 도금목걸이와 머리핀을 훔쳐 강을 향해 던졌는데 세번째 도둑질을 피아노 선생님에게 들킨 날 밤새 지구가 멸망 하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정말 죽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피아노 선생님이 아무에게도 나의 도둑질에 대해 말 하지 않고 그저 온화한 눈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땐 구원의 의미를 깨달았다.


전혀 다른 장소와 전혀 다른 이야기, 게다가 시대가 정확히 겹치지도 않는데 <서교동에서 죽다>를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진영'과 같았던 나이의 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공동 수돗가에 놓인 작두펌프 손잡이를 위아래로 펌프질 하듯이.


어린 시절을 '푸른 하늘 흰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오색 풍선처럼 둥둥' 이런 느낌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히 운이 좋거나 거짓말장이일 테다. 뻐근하고 아련하고 서글프고 서걱거리는 세월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몇번의 순간들로 어두운 시간을 애써 덮어가며 크는 게지. 한 겨울 덜 마른 빨래같은 시간조차 먼 훗날엔 추억이라 부르게 되리라는 걸 그 때 미리 알았더라면 사는 일이, 또 통과의례라 일컫는 시간이 조금은 수월했을까.


인생을 연극이라 한다면, 저마다 한 막을 끝내고 또 한 막을 열며 살아가는 셈이다. 1막의 나를 맡았던 배우가 2막의 나를 연기할 수는 없는 인생이란 연극을. 1막의 진영이가 서교동에서 죽었다면 2막의 진영이는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몇 막의 나를 연기하고 있는 걸까? 그 시절의 지은이는 어디에서 죽었을까? 불 꺼진 지난 무대의 죽은 나를 바라보는 용기, 그 어엿한 용기를 <서교동에서 죽다>를 읽는동안 얻었다. 진영이도 지은이도 참 잘 했다고,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인 미래의 진영이와 지은이가 두 팔을 벌리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참신한 절망의 메세지보다는 진부한 희망의 메세지가 더 힘이 쎄다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고영범

#서교동에서죽다

#도서출판ㅡ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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