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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Oct 06. 2022

레비나의 짧은소설

혜연0817


은미가 죽은지 두달이 지났다. 우리가 살던 남양주 아파트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 그녀는 엄마의 유품인 오렌지색 에르메스 스카프로 목을 맸고, 회사 워크샵에서 사흘만에 돌아온 내가 은미를 가장 먼저 발견했다. 유서에는 은미의 정갈한 필체로 딱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엄마의 제사를 부탁해.


그녀의 엄마는 3년전 '특발성 폐 섬유화증'이라는 희귀병으로 돌아가셨다. 평생 담배 한 대 태워본 적 없는 분이 폐질환을 앓다 목숨을 잃었다는 것에 부아가 치밀어 몹시 울었다. 나는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피우지만 건강 검진 때마다 내 폐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라고, 은미가 높낮이 없는 특유의 어조로 외려 나를 위로했다. 죽은 건 내 엄마가 아니라 그녀의 엄만데. 역시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은미의 SNS계정에 로그인한다. 비밀번호는 '혜연0817', 내 이름과 생일을 조합해 만든 것이다. 은미와 나는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대학을 나왔고, 교양수업을 듣던 중 우연히 그녀와 내 생일이 똑같다는 걸 알게돼 그걸 신기해 하다 친해졌다. 언제가 부터 우린 서로의 이름과 생일을 조합한 걸 각자의 비밀번호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취직을 하고 그녀가 피아노 교습을 하면서 같이 살게 되었다. 정확히는 내가 은미의 아파트에 들어갔다. 같이 살자고 은미가 제안했다. 집에 방이 많다고, 비어있는 방에 들어가기 싫다고.


은미의 SNS계정 담벼락에는 그녀의 부재를 걱정하는 랜선 친구들의 댓글이 많이 달려있었다. 피아노를 가르치던 은미는 그녀의 계정에 클래식 음반 리뷰를 업로드 해왔는데 제법 팔로워가 많았다. 은미의 주검 앞에서도, 장례식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그녀가 쓴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온라인의 세계에서 은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단순한 슬픔,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영혼의 반쪽이 완전이 붕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마블 영화의 최강 빌런 타노쓰가 손가락을 튕기자 히어로들이 검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듯.


은미님?


갑자기 메세지가 날아왔다. 난 뭐라 답해야할지 몰라 그저 가만히 침묵했다.


혹시 어디 아프셨던 거에요? 한참이나 글이 올라오지 않아 무척 걱정했습니다.


아... 네, 조금요.


나도 모르게 은미인척 회신을 보냈다.


어디가 아프셨던 건가요? 이제는 괜찮아지셨나요?


이젠 아프지 않아요.


이젠 아프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정말 걱정했거든요. 메세지 보내는 거 실례인 줄 알지만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네 고맙습니다. 괜찮아요.


그후로도 나는 매일 은미의 SNS계정에 접속한다. 비밀번호는 혜연0817. '리파티'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 내가 처음으로 은미 계정에 접속한 날 안부를 물어온 그 사람과 메세지를 주고 받는다. 그 사람은 은미가 추천한 클래식 앨범은 모두 구매했고 죄다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왜 요즘은 앨범 리뷰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혜연이니까요. 내 비밀번호는 은미0817이지만 나는 은미가 아니거든요. 차마 말하지 못한다.


며칠 뒤면 8월 17일이다.


#짧은소설

#혜연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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