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는 서른다섯살 생일에 연차를 내고 강원도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에 갔다. 그것도 혼자서.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간 서울 변두리 모 대학에서 굳이 지리학을 전공으로 삼은 건 대학 다니는 동안 전국을 돌아볼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고, 그 중에서도 제주도 답사때 본 주상절리는 장관이었다.
강원도 한탄강 주변의 주상절리에 트래킹을 할수있는 길이 생긴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일간지에 '가을에 갈만한 명소 7'에 소개된 기사와 사진을 보고 정태는 그곳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바야흐로 단풍이 이제 막 붉게 물드는 참이었다.
그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총 3.6km 정도의 코스였는데 쌍자라 바위를 지날 때 즈음 반대편에서 오는 남편과 스치게 되었다. 그건 분명 땀 때문에 풍겨오는 냄새였다. 하지만 굉장히 고소한, 땅콩 껍질과 마른 낙엽이 뒤섞인, 언젠가 쿠바 여행중 경험했던 시가 비슷한 향이 났다. 그 냄새에 흠뻑 마음을 빼앗긴 정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남자의 팔을 휙 붙잡았다.
......
약 12초 정도의 정적이 흐르고 그녀는,
나랑 같이 가요.
남자에게 그런 말을 건넸다.
삼개월 후 둘은 결혼을 한다. 휘순, 그러니까 당시 남편 나이가 53세였으니 그녀와는 열여덟살 차이가 났다. 물론 둘에게 그런 건 상관 없었지만 말이다.
그후 바로 아들이 태어났고, 정태는 종종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는 걸까? 라는 불안이 들만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훗날 정태가 휘순에게 그날의 일을 물었더니, 나랑 같이 가요, 라는 그녀의 말이 주위가 일순 고요해지면서 마치 계시처럼 들렸다고. 진짜 그렇게 들렸는지 누가 알겠나만은 그건 사는동안 정태가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도 가장 감동적인 문장이었다.
결혼 7주년을 앞두고 정태와 휘순, 아들 이렇게 셋은 한탄강 주상절리길에 가기로 한다. 그날처럼 단풍의 초록 부분이 점점 붉게 바뀌는 때였다.
여행 날 아침 아들에게 미열이 있었고 설사를 했다. 열이야 해열제로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짧지 않은 주상절리길을 걷다 곤란한 상황이 생길까 염려되었다. 휘순은 정태에게 다음에 가자고 했지만, 정태는 그러지말고 혼자라도 다녀오라고 권했다. 사진으로라도 오늘의 주상절리길 모습을 보여 달라고.
그날 휘순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정태가 아무리 전화를 하고 메세지를 보내도, 미안해, 라는 답이 왔을 뿐. 보름 후 휘순은 정태를 만나 이혼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그날 한탄강 주상절리길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고 하면서. 정태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휘순을 보내주기로 한다. 운명이라잖아. 정태가 아니면 그 감정을 누가 알겠나.
5년후 어느 가을날 휘순은 한탄강 주상절리길에서 만난 3살 위의 주미 품에서 평화롭게 임종을 맞이한다. 휘순은 정태와 이혼을 했음에도 주미와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유는 모른다. 앞으로도 알 길이 없을 테다. 사인은 담낭암으로, 발견했을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고. 휘순이 죽기 얼마 전 정태는 아들과 병원에 들러 휘순의 손을 잡았다. 살짝 열어둔 창문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고 휘순을 처음 만난 날 맡았던 향이 희미하게 풍겨왔다.
할머니!
강우, 그러니까 정태와 휘순의 아들은 주미를 할머니라 불렀다. 강우와 주미는 사이가 아주 좋았다. 때론 정태와 강우보다 더 살갑게 보이기도 했다. 셋은 가끔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걷는다. 그날 만약 강우 컨디션이 좋아 셋이 함께 주상절리길에 갔다면, 휘순 말대로 그날 가지않고 다른 날 갔다면, 삶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강은 언제나 말이 없고 휘순은 이제 세상에 없다. 하지만 주미가 있었고 그건 그것대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