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무 변호사입니다.
현관문 틈으로 음란한 내용의 편지를 반복 전달하면 무슨 범죄에 해당할까요? 몰래 찍은 성관계 영상을 타인에게 보여준 경우는 어떨까요? 이와 관련, 최근에 선고된 대법원 판례 2개를 참고하여 사건을 각색해봤습니다. 죄형법정주의가 무엇이며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기 좋은 사례입니다.
#1. 이웃에 사는 철수와 영희는 호감을 갖고 몇 차례 만났지만, 곧 영희는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통보했다. 철수는 영희의 마음을 돌리려 전화를 하고 카톡도 보냈으나 헛수고였다. 이에 집착이 생긴 철수는 손편지를 적어 영희에게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철수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음란한 표현이 담긴 편지를 10회 이상 작성하여 현관문 틈에 끼워 넣었다. 지속적인 음란 편지에 괴로워하던 영희는 결국 경찰서에 철수를 고소했다.
철수가 한 일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우선 일종의 스토킹(stalking)이 되는데요. 즉 타인의 의사에 반하여 반복적으로 공포, 불안을 주는 행위입니다.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편지를 도달하게 했으므로 성범죄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비난 가능한 행위라고 하여 곧바로 범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바로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 때문입니다. 죄형법정주의란 "법률이 없으면 범죄가 없고 형벌도 없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우리 헌법 제12조 제1항, 제13조 제1항은 이를 천명하고 있으며, 형법 제1조 제1항 역시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한다."라고 정합니다.
죄형법정주의는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rgna Carta)'에 기원을 두며,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형사법의 대원칙입니다. 세부 내용으로는 보통 관습형법 배척, 형벌불소급 원칙, 명확성 원칙, 유추해석 금지, 절대적 부정기형 금지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철수의 행위는 무슨 범죄에 해당할까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어떤 법률이 범죄로 정하고 있는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먼저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에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제3조(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40. (장난전화 등)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화·문자메시지·편지·전자우편·전자문서 등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괴롭힌 사람
41. (지속적 괴롭힘)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
스토킹은 대부분 위 두 조항으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철수의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괴롭힌 사람'이 되는데요. 문제는 처벌 수위가 굉장히 낮은 경범죄라서 피해자 보호에 미흡합니다. 현재 이를 징역형으로 강화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경범죄 처벌법」만으로는 철수를 효과적으로 처벌하지 못하며, 영희를 보호하는 데에도 한계가 존재합니다. 다음으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위 조항에 따르면 철수는 '자기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우편을 통하여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글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에 해당하는 듯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답은 '아니오'입니다. 매우 유사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위 규정은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는 등의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나 그 밖에 일반적으로 통신매체라고 인식되는 수단을 이용하여’ 성적 수치심 등을 일으키는 말, 글, 물건 등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행위를 처벌하고자 하는 것임이 문언상 명백하므로, 위와 같은 통신매체를 이용하지 아니한 채 ‘직접’ 상대방에게 말, 글, 물건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까지 포함하여 위 규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법문의 가능한 의미의 범위를 벗어난 해석으로서 실정법 이상으로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5도17847 판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는 오로지 통신매체를 수단으로 한 행위를 처벌하려는 규정입니다. 그렇다면 죄형법정주의 중 '유추해석 금지'에 따라 통신매체 없이 직접 도달하게 한 행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철수는 비록 편지를 작성하였지만 이를 우편이 아니라 현관문 틈에 끼워 넣는 식으로 전달했으므로, 이 조항을 적용해서는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2. 대학생 민수는 여자친구 경희와 종종 모텔에 들러 데이트를 하였다. 어느 날 민수는 경희가 모르게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성관계 장면을 촬영했다. 경희의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으로 여기던 민수는 기숙사 룸메이트에게 스마트폰에 저장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경희는 민수를 경찰서에 고소했다.
타인의 모습을 몰래 촬영하였다고 해서 늘 범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대개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사례는 경희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 부위가 담겼다는 점에서 성범죄가 되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내용을 검토하겠습니다.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①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민수가 경희의 의사에 반하여 성관계 영상을 촬영한 행위는 위 조항에 따라 분명히 범죄가 됩니다. 즉 '카메라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것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민수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있는 촬영물을 룸메이트에게 '보여준' 행위는 처벌할 수 있을까요? 위 조항의 '반포'나 '제공'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결론을 말하자면 이번에도 답은 '아니오'입니다. 대법원은 '반포', '제공'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반포’는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무상으로 교부하는 것을 말하고, 계속적․반복적으로 전달하여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반포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면 특정한 1인 또는 소수의 사람에게 교부하는 것도 반포에 해당할 수 있다. 한편 ‘반포’와 별도로 열거된 ‘제공’은 ‘반포’에 이르지 아니하는 무상 교부 행위를 말하며, ‘반포’할 의사 없이 특정한 1인 또는 소수의 사람에게 무상으로 교부하는 것은 ‘제공’에 해당한다." (대법원 2016. 12. 27. 선고 2016도16676 판결)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반포'와 '제공'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특정한 1인 또는 소수의 사람에게 교부하는 행위를 포함합니다. 여기서 교부는 '무엇을 내어 줌'을 뜻하는데요. 위 조항의 '반포'나 '제공'에 해당하려면 촬영물을 상대방에게 전달했어야 합니다.
민수는 경희의 몰카를 룸메이트에게 보여주기만 했습니다. 만약 그 영상 파일을 메일이나 메신저 등을 통하여 전송해주었다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 제1항의 '제공'이라고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위 조항에 '열람'이라는 문구가 없는 이상, 단지 보여주기만 한 행위를 '제공'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이 역시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결론입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수, 민수의 각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죄형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지키려고 하면, 살펴본 바와 같이 흠결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결론은 우리의 법감정과는 다소 차이가 납니다. "왜 나쁜 놈을 처벌할 수가 없지?"
인류 사회가 죄형법정주의를 대원칙으로 받아들인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적당히 만든 규정만으로도 '나쁜 놈'을 처벌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시민들은 무엇이 범죄에 해당하는지 알지 못하므로 늘 국가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게 됩니다. 반대로 국가는 시민들을 무분별하게 처벌하거나 억울한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유죄 여부나 형량에서 형평성이 지켜지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철수와 민수를 처벌할 수 없는 빈틈이 생기는 까닭은 죄형법정주의 때문만이 아닙니다. 입법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하였던 미세한 구분, 또는 시대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차이 등이 원인이겠지요. 그 빈틈을 마음대로 채우게 하지 말자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의 가치이므로, 아주 가끔은 철수나 민수처럼 '운 좋은 나쁜 놈'이 생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