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산책을 나갔다가 호숫가에서 몸통부터 머리까지, 부리를 제외하고는 온통 까만 오리를 만났다. 집오리도 아니고 청둥오리도 아니었다. 잘 볶은 커피 원두처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오리들에 자꾸 눈이 갔다. 호수로 시선을 고정하며 걷게 됐다.
그러다 근처에서 거위를 만났다. 오묘한 색 조화가 돋보이는 몸통, 이와 대조적으로 페인트통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노란 부리와 오렌지색 발. 존재감이 확실한 그들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었다. 나도 울타리 앞에 자리를 잡고 구경을 시작하는데,
조용하던 거위 떼가 울기 시작했다. 인간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자세, 그러니까 머리를 등에 파묻고 잠들어 있던 거위들도 덩달아 깨어 부산하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거위가 꺼억꺼억 울면서 다가왔다.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소리였다. 거위가 집과 주인을 지키는 본능이 개만큼이나 강하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성난 듯 울부짖는 모습을 보니 투지만큼은 남부럽지 않아 보였다. 울타리가 없었다면 그대로 돌진할 기세였다.
거위는 왜 갑자기 몸을 돌려 다가왔을까. 사람들이야 구경하든 말든 잠을 자거나 호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는데. 거위를 직접 본 적도 거의 없고, 거위의 습성에 대해서도 무지한 나는 그냥 짐작할 뿐이었다. 먹을 걸 내놓으라고 하는 건가. 이제 그만 쳐다보라고 하는 건가. 아니면 잠자리가 불편해서 괜히 화가 났나.
또는 도망가라는 경고인가.
책 <우리가 날씨다>을 보니 그때 그 거위들이, 무언가를 주장하듯 울부짖기 시작한 거위들을 보며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저자는 기후위기에 무관심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지적한다. 우리는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결과를 보면서도 이 문제와 삶의 연관성을 깨닫지 못한다. 거위가 아무리 울어댄들 그저 잠깐 쳐다보다가 자리를 떴던 나와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은 정말 보이지 않는 위험을 경고했는지도 모른다.
설사 위기의식을 느낀들 대다수 사람들은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위기 인식만으로는 사람들이 직접적인 행동에 나설 만큼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에 관심이 없는가. 왜 기후변화 문제를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문제로 취급할까. 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문제를 설명하고, 원인과 결과를 매끈하게 분석하며, 실천강령으로 바로 넘어가는 매뉴얼식 구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책이 챕터가 바뀔 때마다 잠깐 쉬어가는 고속도로에 가깝다면, 이 책은 자전거 여행을 닮았다. 굽이굽이 저자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기억 사이를 춤추듯 여행한다. 저자의 할머니가 나치를 피해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혼자 폴란드를 떠났거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시민들이 날이 어두워지면 재빨리 가정에서 소등함으로써 전선에 나간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탰던 이야기 등. 저자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왜'를 밝히기 위해 여러 길을 돌아간다. 너무나 명확하게 파악되는 책 제목과는 딴판인 전개 방식이다.
챕터 2 '어떻게 하면 대멸종을 막을 수 있을까'는 다른 챕터와 다르다. 기후변화의 실태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사실이 나열된다. 이전까지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어떻게 굳어지는지 다루며 진단과 해결방안에 대한 궁금증을 부추기다가, 비로소 이 챕터에서 저자의 주장이 윤곽을 드러낸다.
- 개인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활동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채식 위주로 먹기, 비행기 여행 피하기, 차 없이 살기, 아이 적게 낳기.
- 위의 네 가지 행동 중에서 가장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과 이산화질소에 즉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채식 위주의 식사뿐이다. (p.119)
스티븐 호킹은 인간은 결국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자원은 고갈되고, 지구는 결국 인간의 활동을 감당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그러나 플랜 B를 늘 마련해두는 사람이더라도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없다.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우리의 플래닛 B가 있으리라는 것. 저자는 위험에서 도망쳐서 자신뿐만 아니라 미래의 후손을 모두 구했던 할머니의 용기를 언급하며, 우리 역시 미래 세대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말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을 일종의 자살로 본다면, 우리의 자살은 그로 인해 죽게 될 사람들이 아마도 우리가 아닐 거라는 사실 때문에 더 소름끼친다. (p.222)
기후변화가 초래할 파국적인 결과는 이미 막을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지금부터 모두 한마음으로 노력한다면 최악을 겨우 모면할 수 있을 정도다.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다가 겨우 돌아온 것을 본 지금, 인류의 미래를 누구도 낙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커다란 성취를 할 수 없으니까 아예 시도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을 비윤리적이라고 못 박는다. 언제까지 정부와 기업 등 소위 거대 권력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며 우리의 책임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이 행동을 바꾸도록 유도하고 각성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너와 나 같은, 평범한 개인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체념하지 말자. 죽음과 같은 위험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두 가지 방향으로 달릴 수 있다. 죽음을 향해 달리거나 혹은 다가오는 죽음을 의식하며 반대 방향으로, 삶을 향해 달리거나. 직면한 위험 앞에서 우리 몸은 아드레날린을 뿜어낸다. 내게 해가 될 것 같은 존재에서 지체하지 않고 멀리 떨어질 수 있도록. 삶으로 향하기 위해 '죽음이 다가오는 사실을 이용'할 수 있다고 책은 힘주어 말한다.
꽥꽥 울어대는 거위를 보다 무심히 발길을 돌리는 대신, 변화를 위해 꽥꽥 울어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