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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쏨땀쏨땀 애슐리 Nov 11. 2019

삼발의 나라, 인도네시아

매콤한 삼발에 호되게 당하다

얕봤는데 호되게 당했다. 꽤 맵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입 안에서 들소 떼가 뛰노는 것 같은 통증에 눈물도 찔끔 난다. 인도네시아의 국민 소스라는 삼발(sambal)의 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삼발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기본양념으로 많이 쓰는 소스다. 우리나라 음식과 비교하자면 고추장과 비슷하다. 야채나 라임즙, 해산물, 액젓 등과 섞어 손님상에 내곤 한다. 지역에 따라, 음식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요리사의 역량에 따라 하나의 멜로디 라인이 다채로운 변주곡으로 둔갑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눈물 콧물을 짜게 만든 삼발소스 치킨윙. 정말 그렇게 안보였는데, 뒷통수 한 번 제대로 맞았다.

볶음밥 하나를 시키더라도 여러 가지 삼발을 내어주는 음식점도 있었고, 아예 삼발을 주제로 하는 곳도 있다. 삼발을 접할 땐 한국인의 '맵부심'은 잠시 내려놔도 된다. 어린아이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초보 단계도 있지만, 인도네시아 사람이 맵다고 하면 진짜 매운 거다. 괜히 허풍을 떨 필요가 없다.


나는 메뉴판의 고추 그림을 무시하고 삼발소스에 버무린 치킨 윙을 시켰다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눈물의 치맥을 해야 했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강력하게 매운 대신 뒷심은 없는 편이라고 느껴지긴 했다.


너무 매워 큰 코 다친 적도 있었지만, 삼발은 한국인 여행자의 향수병을 덜어주는 귀한 존재다. 여행지에서 음식이 입에 안 맞을까 걱정될 때 챙기는 대표적인 식품을 떠올려 보자. 짭짤한 밑반찬이나 라면류를 준비해 가져가기도 하지만, 부피가 만만찮다. 그럴 때 쉽게 챙겨갈 수 있는 게 고추장 튜브다. 이것도, 저것도 다 입에 안 맞는다면 그냥 쌀밥에 고추장 비벼서 한 그릇 뚝딱하게 되는데, 인도네시아에선 삼발이 고추장 튜브의 역할을 한다.

인니, 말레이 여행에서 먹었던 나시 르막.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소스의 감칠맛 때문인지, 금방 그릇을 비우게 된다.

인니나 말레이에서 서민들이 즐겨먹는 한 끼 식사가 있다. 나시 르막(nasi lemak)이라는 건데, 코코넛 밀크를 넣고 지은 쌀밥에 멸치볶음이나 땅콩, 오이 등을 넓은 접시에 담은 음식이다. 여기에 삼발을 몇 스푼 넣어서 쓱쓱 비벼 먹는다. 이 지역 특유의 비빔밥이다.

불맛을 입혀 구운 사테에 삼발 소스를 콕 찍으면 맥주가 무한대로 들어간다. 저 새우 요리는 사진만 봐도 침이 고여 미칠 지경.

동남아시아 어느 지역을 가도 흔한 요리인 꼬치구이 사테(sate)에도 삼발 소스가 곁들여져 나오곤 한다. 보통 단짠단짠의 정석인 땅콩 소스가 나오는데, 여기에 맵단짠 소스까지 한 가지가 더 나오면 금상첨화다. 해산물과의 조합도 좋다. 살짝 튀긴 새우를 삼발 소스, 통후추 등과 함께 매콤하게 볶은 요리는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먹었던 음식 베스트 3 안에 든다. 새우도 새우지만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쌀밥 추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족자의 한 편의점 풍경. 다른 라면과 비교해보면 꽤 비싼 편인데도 불닭볶음면이 잘 팔린단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매콤했던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족자카르타의 한 편의점에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을 발견했던 일이다. '와 저거 매운데, 이 나라 사람들 먹을 수 있는 거야?'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바보 같은 질문이다. 그곳은 삼발의 나라, 인도네시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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