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TYMOON Mar 05. 2018

너라는 친구

내게 있어 다행이다

밤이 늦어 편지를 잘 받았다는 카톡은 하지 않을게

혹시나 머리맡의 폰이 울려 아직 얼굴도 못 본 네 사랑스러운 아이가 깨면, 남편이 깨면 안되니까


친구의 친구로 만났던 우리는 벌써 인생의 반을 함께인 듯 아닌 듯 살아내며 서른을 맞이했구나

너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어린 어른이 되었고

나는 어느새 주식이라던가 주택청약이라던가 지독히 현실얘기하는 흔한 어른이 되었네


늘 시댁일로 집안일로 바빠 겨우 약속했지만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던 내게 미안했을까

몇 주에 걸쳐 작성된 몇 장의 편지는 고맙고 고맙다


아이를 돌보느라 혼자만의 시간도 인생도 없다던

그럼에도 아이가 너무 예뻐 벌써부터 유치원 보내면 떨어질 걱정에 안절부절하던

뒤늦은 아이돌 덕질에 빠져버렸다며 고백하던

요즘의 네 얘기가 나는 너무나도 기꺼워서


실은 카톡도 문자도 전화도 연락할 방법은 많지만

소녀시절 그렇게 하루걸러 편질 주고 받던 우리여서 그런지 편지는 불편하지만 제일 편한 걸


다 읽고 울어버렸다

온통 꽃이었던 편지지 때문이었을까

내 앞날이 모두 꽃과 같은 봄이길 바란 네 인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꽃처럼 고운 우리 옛시절이 떠올라 그랬나


다 늙어 주책이다 하며 혼자 엉엉 울어버렸다

아마도 울었단 얘기는 네게 하지 않겠지만

너도 어렴풋 알거란 생각은 한다


점점 다른 시간을 살게 되는 우리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아릿해지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서로 여기며 각자 살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조만간 날 좋은 날에

설레는 마음으로 네게 줄 편지지를 사러 가야겠다

지금 쓰는 이 편지와 같은 내용을 쓰겠지만

오늘은 부칠 수 없을 테니 이만 줄여야 겠다


도롱도롱 좋은 꿈꾸며 자고 있을 친구에게

작가의 이전글 너였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