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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와 달 Sep 19. 2018

2. 아침을 챙기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온 지 2주 정도 되어가고 있다.


첫 일주일은, 길에서 휴대폰을 절대 들고 있지 말라는 계속되는 신신당부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방을 낚아채간다는 이야기 속에서 회사에서 집으로 걷는 거리마저 은근한 긴장으로 근육을 빳빳하게 만들었다.

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면 먼저 미소를 짓고 인사를 건네는 행인들도 있지만

중남미의 문화라고 하는, 시도때도 없는 남성들의 flirting 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워 걸음을 재촉하기만 했고 china라고 부르고는 기분 나쁜 웃음을 남긴 뒤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시 타국에 나오면 한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가’ 실감나게 그리워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마저 오만한 것이, 한국에서도 눈에 띄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해석하지는 못하지만 표정으로 전해지는 기분 나쁜 시선과 말들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류 속의 비주류로 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나의 하루에 피로와 긴장을 낳는다.

비주류를 대하는 태도는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가.



요 며칠은 한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과도기에 끼여 있는 내 마음을 다잡는데 애를 쓰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고, 친근한 사람들과 주고 받는 농담들이 그리워 한국의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혼자 길을 걸을 때는 공허함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나무 줄기와 꽃의 모양새가 모두 새로운 곳이지만 그 새로움이 넘치는 곳에서 내 마음은 어딘가 시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2년 전 처음 간 유럽에서도 나는 마음 속에 혼자였음을 회상하기도 했다.


아팠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 나를 다시 약하게 만들 때가 있다. 덮여 있었던 과거의 틈새를 열어본 셈인데 그것을 다시 덮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어떤 슬픔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덮어두는 것이 최선이다.

유럽에서 나는 처음으로 오랜 시간 외국에 있었던 것인데, 그렇게 물리적으로 '처음', '혼자', '새로움', '낯섦' 속에 완전히 놓여지니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그때 외롭고 아팠던 것인데, 그래서 소중한 대화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필요했던 것인데 왜 나는 스스로 그것을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떨어져가는 낙엽들 속에 내 고개도 수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에나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것을 느끼고 발견할 때마다 옥상의 민들레꽃 이미지가 떠오른다. 오늘 아침에는 옥따비오 아저씨가 챙겨준 빵과 커피가 그랬다. 옥따비오 아저씨는 같은 사무실을 쓰는 운전기사님이신데 출퇴근할 때는 순수건을 이마에 두르고 멋진 파란색 오토바이를 타는 마성의 인물로 늘 나를 흥겹게 “끄으을라우디아(Claudia)~~”라고 부르신다.

오늘 아침을 먹지 않은 나를 탕비실에 데려가고는 당신이 사놓은 빵을 챙겨주고 우유에 커피를 타 데워주셨다.


“여기 늘 빵을 놔둘테니까 언제든 먹어. 아침을 안 먹으면 힘이 없어.”


매일 먹던 아침식사는 혼자 작은 방에서 살기 시작한 후부턴 사치로 변했다. 꼭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사과 한 개나 씨리얼 정도라도 먹으면 좋을테지만, 내가 내 몸을 챙기는 것, 그리하여 내 마음을 달래는 것은 너무 바쁜 일이었다. 그런 나를 누군가 챙겨주는 것이 아래로 아래로 처져가는 마음에 이리도 큰 위로가 되다니, 하얀 빵과 커피를 마시며 흐뭇했다. 지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애정의 사람들도 있어 참 다행이다. 여러 이름들을 만나 한 이름이 다른 이름을 챙겨주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마음 중 하나이고 나를 버티게 하는 원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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