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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와 달 Nov 09. 2018

3. 알멘드라 숲

내가 무너져도 되는 곳

알멘드라는 아몬드야. 그래, 아몬드가 알멘드라야. 이건 아몬드 나무지. 

파도를 잡는다고 해. 이 파도는 조금 많이 높은 것 같아, 다른 걸 기다려보자. 

자, 이거야. 휘젓고 휘젓고, 지금 일어서는 거야!

괜찮아? 자, 다시 올라가고, 다시 기다려보자. 새 파도를. 


대서양과 카리브해가 만나는 곳, 어떤 섬 위의 북쪽 해변에서의 잔상이 나에게 계속 남아있다. 

서핑을 하러 갔다가 바다와 아몬드 숲에서 너무도 많은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푸른 파다에서 움직이고 누워있는다. 중간에 비가 내려도 문제는 없다. 이미 젖은 몸에 비는 음악이다. 물과 하나가 되는 신비한 순간은 기쁨과 슬픔 사이의 그 경계를 초월한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뒤돌아 파도를 기다린다. 모두가 같은 파도를 넘는 게 아니다. 나에게 맞는 파도를 기다린다.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하는 파도를 잡으면 될 뿐. 하나가 되려고 시도해본다. 나를 실어가기를 바라며 일어선다.


'내가 감히 이 파도에게 나를 맡겨도 되는 걸까?', '이 파도는 나를 집어삼키지 않을까?', '나는 결국엔 무너지고 말 거야'라는 의문과 두려움도 순간. 맞아, 떨어져도 괜찮아, 결국엔 무너져도 괜찮아. 파도 위에 일어서도 해안가에 다가가면 모두 몸을 스스로 뉘이는 걸. 결국 모두 물에서 첨벙대는, 즐거운 장단들이지. 나아갔다가, 기다렸다가, 시도했다가, 물에 다시 돌아가는 거야. 저마다의 파도를 기다리고 몸을 싣는 역동적인 순간들은 또 어찌나 평화의 고요함을 띠는지. 아름다운 순환이다. 움직임과 시도와 흐트러짐. 첨벙, 첨벙. 솨르르 순간 빛을 비췄다가 사라지는 물 속의 물방울들. 


알멘드라는 아몬드. 

비는 물이고, 나도 물이 될 수 있구나. 

알멘드라 열매로 파도 앞에서 하트 모래를 꾸미는 모녀를 보았고

덤블링을 하며 웃는 아이들을 보았어. 


모든 것은 거기 있었다, 혹은 그곳에 있는 것 외에 달리 바랄 것은 없었다. 

나를 집어삼키는 바다를 사랑하는 일은 나에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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