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전 날은 들떠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고, 엄마가 도시락에 뭘 싸주실까 기대하다 보니 잘 시간을 훌쩍 넘기곤 했다. 늦게까지 잠 안 자면 소풍 못 간다는 엄마의 말에 질끈 눈을 감고 "나 잔다!"라고 외쳤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다시 슬그머니 눈을 뜨고는 '내일이 빨리,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재료 준비에 여념이 없으셨다. (사실, 김밥이란 것이 한 입에 먹기는 참 편하지만 재료 준비할 것이 만만치않으니까. 뭔가 하나라도 빼놓으면 그 맛이 안 나는 것 같고.) 계란 지단을 부치고, 햄을 기다랗게 썰어서 굽고, 단무지도 길게 썰어놓으신 후, 쟁반에 가지런히 색색 줄 맞춰 준비. 시금치는 데친 후에 조물조물 약간의 양념을 하고 당근도 채 썰어 기름에 달달 볶은 후 쟁반에 합류. 고슬고슬 지은 밥도 참기름에 약간의 소금으로 양념하면 준비 완료.
엄마는 김발에 김을 올려놓고 하얀 밥을 얇게 펴시고 그 위에 준비된 재료들을 차곡차곡 쌓으셨다. 난 항상 김밥을 쌀 때면 밥 위에 예쁜 무지개를 쌓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노란 단무지와 계란지단, 주황색 당근, 초록색 시금치, 속살은 핑크빛이 도는 햄까지 예쁜 무지개가 완성되면 그 주위를 구름같이 하얀 밥과 까만 김이 감싸는 동그란 하늘. 그래서 소풍에 김밥을 싸가는 걸까. 먹기 쉽기도 하지만, 무지개를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김밥뿐이잖아, 그러면 만약 소풍날 비가 와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 어린 마음에 그렇게 생각했었다.
남들과는 차별화된 김밥을 추구하셨던 엄마는 항상 김밥을 세모 모양으로 만들어주셨다. 마지막에 동그란 모양으로 힘을 주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세모 모양으로 꾹꾹 눌러 썰어보면 완벽한 정삼각형 모양의 김밥이 만들어졌다. 둥글게 말지 않고 세모 모양으로 말아도 엄마는 한 번도 김밥 옆구리를 터뜨리시지 않았다. 난 그 세모 모양의 김밥이 참 맘에 들었다.
도시락을 짠! 하고 열어보면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 통에는 동그란 김밥들이 담겨있었는데, 내 도시락 통에는 세모 모양의 김밥들이 퍼즐처럼 예쁘게 담겨있었다. 친구들도 신기해하며 먹어보고 싶어 했다. 같은 재료들이 들어있더라도 모양 때문인지 더 맛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회사에 다니시고부터는 세모 모양의 김밥을 만날 수 없었다. 회사 일로도 바쁜 데다가 동생도 있으니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에 김밥을 싸시기에는 무리이지 않았을까.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신 후에는 아빠가 새벽에 나가서 근처에 유명했던 할머니 김밥 가게에 가서 김밥을 사 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그것이 못내 아쉬우셨는지, 사온 김밥을 예쁘게 도시락통에 담아주셨었다. 유명한 가게에서 사오셨다고 했는데, 맛은 세모 김밥이 훨씬 더 맛있었다. 들어있는 재료들은 엄마의 김밥보다 더 많고 푸짐했지만, 내겐 세모 김밥이 최고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모양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주고 또 줘도 더 주고 싶은 딸에게 김밥 모양까지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좋은 것만 먹이고 싶고, 예쁜 것만 보여주고 싶고, 하다못해 김밥 모양도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해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때는 몰랐던 그 마음이 이제서야 아주 조금이나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