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우리 엄마가 다른 엄마들보다 제일 감각적이며 트렌드를 따라가는 신세대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어느 날 엄마가 식탁으로 가져온 정체불명의 요리때문이었다.
"엄마, 이건 뭐야? 무슨 음식이야?"
"이건 비프스튜라고 하는거야. 비프스튜."
"비프...뭐?"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요리책이 여러 권 있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요리책 보는 것을 좋아했던터라 자주 들여다보곤 했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요리책에만 있던, 실제로는 먹어보지 못한 '비프스튜'를 선보이셨다.
넓은 접시에 흰 밥을 담고 그 옆에 카레를 담듯 빨간 걸쭉한 국물이 담겨있었다. 그 위에는 큼지막하게 썰어넣은 당근, 감자같은 야채가 있었고, 깍둑썰기한 모양의 소고기가 듬뿍 있었다. 케첩의 시큼하면서도 새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뭔가 신기한 비주얼에 나와 동생은 물론 아빠까지도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강하다.
그 때의 일을 엄마와 함께 인터뷰 형식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딸: 그 때 왜 비프스튜라는 파격적인 메뉴를 선보이게 되신거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엄마: 우리 딸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해봤는데, 그게 요리책을 보고 한다고 해도 아무나 그렇게 맛있게 만들기는 힘들어요. (인터뷰를 의식하신 듯 존댓말로 대답하셨다.) 요리책에서 뭘 해줄까 보다가 그게 눈에 딱 들어오더라구요. 그래서 해봤더니 딸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줘서 그 뒤로도 자주 해줬었죠.
딸: 어렸을 적 제 친구들은 비프스튜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다반사였는데, 굉장히 앞서가셨네요. 입맛이 참 트렌디하셨나봐요.
엄마: 서양식이니까 아무래도 그 땐 많이 몰랐던 것 같네요. 제가 좀 트렌디하고 그래요.
딸: 아, 예... 알겠습니다. 더 기억나는 건 있으신가요?
엄마: 이제 그만해. 기억 안나!
오랜만에 비프 스튜 얘기를 하면서 엄마께 다시 한번 비프스튜 앵콜 요청을 드렸다.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으신다 하시면서 녹슬지 않은 솜씨를 선보이셨다.
옛날 그대로의 비주얼, 비프스튜. 그 때와 같이 비프스튜를 만들어 주시는 우리 엄마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센스있는 트렌디한 엄마다. 엄마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