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면 식성도 바뀌나?
미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음식에 있어서는 도전정신이 뛰어나신 미식가셨고, 엄마는 자신의 취향이 너무 뚜렷하고 확고해서 조금이라도 익숙치 않은 재료나 취향에 맞지 않는 음식은 좋아하지 않으셨다. 부부이지만 식성은 완전히 반대랄까.
우리 가족이 한국에 살고 있을 때, 아빠는 미8군에서 일하셨다. 환경의 영향이 컸던 것일까, 다른 어른분들과는 다르게 느끼한 서양음식도 거리낌없이 맛있게 잘 드셨다.
하루는 내 생일을 맞아 외식을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강남역에 있던 '소렌토'라는 파스타집을 찾아갔었는데, 생애 처음 그곳에서 '까르보나라'라는 걸 먹어보는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참 맛있었는데, 먹다보니 느끼하기도 하고 피클이 없으면 못먹을것 같았는데, 그걸 아빠는 다 드셨다. 굉장히 만족스러워하시면서.
뉴질랜드로 여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맛있는 피자집이라고 해서 갔던 곳은 피자 위에 앤쵸비가 하나도 아니고 여러마리가 떡하니 올라가서 나왔는데 , 그 비주얼이란...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는 생각만으로도 비리고 먹을 수도 없었는데, 아빠는 아주 맛있게, 다 드셨다. 앤쵸비 리필을 외치시면서.
미국에 와서도 아빠의 식성은 여전했다. 크림소스 스파게티도 잘 드시고, 보기만 해도 느끼할 것 같은 음식들도 좋아하셨으니까. 사실, 미국인인데 우리에게 숨긴건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아빠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에 엄마는 느끼한 건 아예 손도 대지 못하셨다. 항상 칼칼하고 뜨거워야만 속이 풀리고 개운하다고 생각하신 엄마에게 크림스파게티는 너무 어려웠던거지.
이민오고 얼마 안되었을 때 일식집에 갔었을 때, 야끼우동이 나베우동인 줄 알고 잘못 주문했다가 볶음우동이 나오는 바람에 엄마는 몇 입도 못드시고 그 날 밤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다. 미국 음식을 팔던 식당에서는 샐러드만 드시고, 다른 음식은 좋아하지 않으셨다.
단 음식도 물론 엄마의 취향이 아니었다. 단 디저트 종류는 아빠가 좋아하셨지, 엄마는 한 두입 드시고는 너무 달아 머리가 아프다고 말씀하시기가 다반사였으니까.
느끼한 양식, 달디 단 음식도 문제없었던 아빠의 식성이 어느 날인가부터 변했고,
느끼한 건 질색이라던 엄마의 식성이 어느 날인가부터 변했다.
부모님 두분 다 50대 후반이 가까워지면서 식성의 변화는 일어났다.
아빠는 예전같이 잘 드시던 느끼한 음식들을 조금씩 거부하시기 시작하시더니 이제는 입에도 대지 않으신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크림스파게티 같은 음식들은 느끼하다고 한 입도 드실까 말까다. 밖으로 외식을 나가면 무조건 칼칼하거나 매콤하거나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만 찾으셨다. 이탈리안 식당을 가도 매운 토마토 소스의 파스타에 레드페퍼 가루를 넣어서 드시는 게 이제는 입맛에 맞으시고, 양식을 찾기 보다는 한식이나 아시안 음식들을 더 선호하셨다. 좀 더 담백하고 부담되지 않는 음식을 좋아하시게 되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산뜻한 샐러드를 먹으러 가자고 하기도 하시고, 너무 단 음식도 이제는 싫다고 하시니 엄마의 식성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느낌이었다.
그와 반대로 엄마의 식성은 예전의 아빠처럼 변했다. 어느 날 갑자기 까르보나라가 먹고 싶다고 하시고는 한 그릇을 뚝딱 비우신 후부터는 크림스파게티 위에 치즈를 듬뿍 올려 드시기도 하시고, 예전같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꾸덕꾸덕한 초코 치즈케익도 지금은 한 조각을 금세 다 드신다. 브라우니같이 단 디저트도 좋아하시고, 예전에는 잘 안드시던 아이스크림도 이제는 정말 좋아하신다. 내가 해 드리는 까르보나라를 좋아하셔서 자꾸 해달라고 하시는데, 아빠는 드시지를 않으니 이것 참, 아빠를 위해서 다른 요리를 또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꼭, 시크릿가든처럼 영혼이 바뀐 게 아니라 서로의 식성만 바뀐 느낌이랄까.
나이가 들면서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서로 얼굴 생김새나 분위기는 많이 닮아갔지만, 식성만은 극과 극을 달린다. 나이가 들면서 갱년기에 들어서고 그런 신체적 / 정신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식성이 변하기도 하는가보다.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