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살던 내가 보스턴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되면서 드디어 자취를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부터 쭉 계속 살아왔던 사람들과의 이별, 완전한 독립이었다.
미국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California에서 동쪽 끝에 있는 Massachusetts 까지는 비행기로만 6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 가까이 가면 들러서 잘 살고 있는지 보기라도 할텐데, 너무 멀리 가는 것 아니냐며 부모님은 걱정에 걱정이 끊이질 않으셨다. 혼자 살아본 적 없는 내가 엄마 없이 밥이나 챙겨먹고 살려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보스턴에 큰딸이 홀로 가서 대학생활을 한다는 게 엄마는 굉장히 서운하고 슬프셨나보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밖에서 동생과 소꿉놀이 할 때면 잔디를 예쁘게 뜯어, 평평한 돌 위에 놓고는, 날렵하게 생긴 돌로 잘 빻아서 넓은 나뭇잎 위에 올려 완성하곤 했고, 좀 더 발전해서 집에서 소꿉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면 가지고 있던 인형들을 다 꺼내서 티파티를 즐기곤 했더랬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회사에 가시면 학교 다녀온 동생을 챙겨 밥을 먹이는 것은 내 일이었기때문에 꽤나 능숙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엄마 기억엔 아닐지 몰라도.) 엄마 어깨 너머로 보고 얻은 지식으로 동생에게 볶음밥을 해 먹이기도 하고는 했었다. 손재주가 없는 것은 아니여서 이리저리 얼렁뚱땅 해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집에서 가끔 엄마가 요리하시는 걸 거들기도 했었어서 떠나는 날이 가까워오면 올수록 나는 나름 자신만만 했었다. 그까이 꺼, 혼자 사는게 뭐 어렵고 힘들다고. 하면 다 할 수 있어!
그렇게 다짐했던 것이 금방이었는데, 눈물 콧물 쏙 빼놨던 공항에서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고 나서 6시간 후, 나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나라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완벽히 혼자였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그 큰 도시에서, 온전히 혼자였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내가 혼자 이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집이 그리웠고 가족이 그리웠다.
날마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뜨신 밥을 매일 먹으니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몰랐다. 소중한 것은 곁에 있으면 모르고, 그것이 떠난 후에야 알게 된다고 하지 않나. 내가 딱 그랬다. 부모님과 같이 살때는 집밥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적도 없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때맞춰 엄마가 음식을 해주시고 반찬들에 밥에 가족들을 위해 요리하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가끔씩 같은 반찬이 올라온다고 투정부린 때도 있었고, 더 맛있는 것을 달라 떼쓴적도 많았는데.
때맞춰 끼니를 챙겨먹는다는 게 왜 그렇게 힘든지 뼈저리게 느꼈던 3년동안의 자취생활. 해 먹을건 없고, 배는 고프고. 먹고 치우기는 왜 그렇게 귀찮은지. 식비를 아껴보겠다고 계란밥으로 연명하던 때도 있었고, 가끔 포식하자며 룸메이트와 같이 한밤중에 김치찌개를 끓이던 날들도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 중간에 끼니를 때워야할 때면 학교 바로 옆에 있던 맥도날드에서 $1짜리 치즈버거를 사먹던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우린 죽으면 여태까지 먹은 인스턴트 음식과 햄버거로 인해 썩지도 않을 거라고 친구들과 웃으며 농담을 하곤 했었다.
엄마가 해 준 밥이 그리워, 전화를 걸어 여러 가지 음식의 레시피를 물어 그대로 만들어보아도 엄마가 해줬던 그 맛이 나질 않았다. 분명 넣으라는 양만큼 넣었고, 끓이라는 대로 끓였고, 엄마가 얘기해준 그대로 요리했는데도, 집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분명, 간은 맞았지만 엄마의 맛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비어있었다. 그건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 때 내게 밥이라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서 먹어야만 하는 양분같은 것이었다. 치열한 삶과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장전해야 했던 총알같은 것들. 허겁지겁 한 끼를 때우기 일쑤였고, 대충 있는 거로 먹자는 식의 끼니가 대부분이었던 날들. 그 안에 밥은 있었지만, 집밥은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요리하고 차려낸 집밥. 갈구했지만, 결코 충족되지 않았던 날들.
그래서, 그렇게 울었나보다. 엄마가 보내주신 소포 안 인스턴트 음식들 가운데 자리한 엄마의 밑반찬을 보고는. 큰 딸이 밥 잘 못 챙겨먹을까봐 만들어 챙긴 밑반찬 몇 통이, 소포 안에서 혹시나 샐까, 랩으로 돌돌 말아 꽁꽁 싸주신 그 마음을 느낀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