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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모 Oct 17. 2017

치열한 삶에서 조금 물러나 보기로 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 2016

십 대와 이십 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 데려가서 그 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겁이 많은데도 용기를 내줘서,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쇼코의 미소 中,  최은영, 문학동네, 2016


학부 과정의 마지막을 준비해 가면서, 나는 이상하게 조급함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다. '찾고 있다'가 아닌 ‘찾았다’라는 시제를 사용할 만큼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숨 막히게 달려왔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던 스무 살 언저리를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괜찮은 상태’라는 확신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를 학생이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불안하지 않다. 갑작스레 찾아온  평온함은 아니다. ‘늦었다’나, ‘뒤처졌다’는 비록 그게 어떤 이에게는 진정성 있는 충고일지라도 나 스스로에게 함부로 언급하지도, 무심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할 금기와도 같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조급하게 생각하고, 스스로가 ‘덜’ 준비된 인간이라는 두려움이 앞서 다시는 겪을 수 없을지 모르는 소중한 경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를 비롯해 대다수의 청년들은 미래의 불투명한 보상을 얻기 위해 현재를 숱하게 포기해왔다. 고루한 예시지만 찬란한 대학생활을 담보로 일상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지 않았는가. 어렵게 고생해 들어온 대학이 내 기대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해 방황하면서도 가슴 한 켠의 불안함과 조급함을 놓지 못해 뭐라도 쥐어보려 아등바등했던 시절이 지금 돌아보니 가엽기만 하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인생의 최정점은 이미 예전에 끝나버리고, 지금의 나는 순조롭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 2015년 5월 2일



자세한 내막은 기억나지 않으나, 2년 전의 나는 최 작가의 말마따나 스스로가 단지 나라는 이유만으로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자꾸만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 단조로운 일상이 내 노력의 대가인지, 아니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찬란한 결실을 놓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괴롭게 보냈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어느 시점부터 고생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사용되면서 여유나 안정이 마치 적당함의 추구처럼 여겨졌다. 자아성찰은 아픔을 보듬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내 안의 부족함을 찾고 이를 충족해야 하는 과정으로 왜곡됐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나는 이상하게 쥐고 있는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위해 쫓기듯 하루를 보내야 하고, 불투명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불행을 당연히 인내해야 하는가. 쉼 없이 달려온 학부의 마지막 학기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누군가의 시각에서는 다소 미적지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제물로 바치는 것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마음, 늦었다는 마음, 더 늦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뒤로하고 좋아하는 것, 놓치고 싶지 않은 일상들, 내게 잔잔한 사유를 허락하는 길을 걸어보려 한다.


지금의 내가 불과 몇 년 전의 나를 딱하게 여겼듯이, 10년 후의 나는 최 작가처럼 지금의 나에게 어깨를 주물러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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