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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Nov 27. 2018

꼭 슬픔에도 순위를 매겨야 하나요

누가 제일 슬프고, 누가 제일 덜 슬픈지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이불속을 바로 벗어나지 못하고 늘 하는 일이 있다. 휴대전화를 들어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뉴스 기사들을 훑어보는 일.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겠지. 어제 아침에도 그렇게 이불속에서 기사를 보다가,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담긴 뉴스를 읽게 되었다. 부모를 모두 잃고 홀로 남겨진 아이, 약혼자를 잃은 결혼 1주일 전의 신부, 나이 든 어머니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과정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들. 기사에 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텍스트를 곱씹어 읽기 힘들 정도로 안타깝고 처참한 소식이었다. 

 마음이 아파 얼른 스크롤을 내려 다른 기사로 가려는데, 밑에 달린 베스트 댓글 몇 개가 눈에 띄었다. "그래도 ㅇㅇ가 제일 불쌍한 듯, ㅇㅇ하면 ㅇㅇ하잖아.", "ㅇㅇ가 제일 불쌍한 거 아님?", "ㅇㅇ만 안됐지 뭐" 같은 댓글들이 많은 추천수를 받아 베스트 댓글에 올라 있었다. 마치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공략을 추천이라도 하듯, 누가누가 더 불쌍하고 누가누가 제일 안됐는지 경쟁하듯 추천과 비추천을 달고 올라온 댓글들이 정말 불쾌했다. 왜 이 사람들은 누구의 불행의 크기가 더 큰지에 대해 이렇게나 집중하고 있는 걸까. 댓글창에 딸린 대댓 창을 보니 "ㅇㅇ가 뭐가 불쌍하냐, ㅇㅇ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와 같은 댓글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창 같은 것을 보는 게 아닌데.. 원래 나는 나의 정신건강상의 이로움을 위해 온라인 기사나 게시글의 댓글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그날도 평소처럼 댓글창 같은 것은 보지 않았어야 했다. 하루를 준비하는 아침 시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순위 매기는 일에 집착하는 걸까. 누군가의 슬픔에도, 누군가의 고통에도 "네가 제일 불행해", "너는 쟤에 비하면 슬픈 것도 아니야.", "너도 슬프긴 하겠지만 ㅇㅇ가 더 크지". 공감 대신 평가를 택하는 것은 아주 쉽고 저렴한 방법이다. 비교나 평가 없이 감정을 있는 그 자체만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일은 불가능한 일인 걸까?


 올해도 수능이 있었다. '불수능'이라며 언론에서도 대서특필 했을 정도로 시험이 어려웠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매번 수능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못하다. 왜 아이들을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으로 줄 세우냐는 것이 주된 비판의 골자다. 다들 그렇게 줄 세우기에 신물이 나 있으면서도, 왜 우리의 감정을 줄 세우는 일은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비단 슬픔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축복받을만한 행복도 삶 속에서 빈번하게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있는 그 자체만으로 축하하거나, 축복하지 못하고 "그래도 ~는 좀 아쉽겠네.", "ㅇㅇ보단 못해서 어떡해? 그래도 축하해"와 같은 말들을 곁들이는 경우를 어디서든 숱하게 목격한다.


 감정에는 분명 크기가 있다. 더 슬프고, 덜 슬플 수 있다. 조금 행복했다가, 더 많이 행복한 날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정의 소유자가 내 감정만을 가지고 판단할 문제다. 타인이 평가하고 재단해서 슬픔이나 애도, 행복이나 축하를 평가절하할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언제나 평가받고, 잣대 속에 살아가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에 진심 어린 공감이 더 필요한 일들 앞에서도 잣대부터 들이미는 게 당연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해서.

 나는 K팝스타나, 쇼미 더 머니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보지 않는다. 밖에서도 늘 경쟁하고 평가하는 일들의 연속인데, TV로까지 그런 걸 보고 있자니 피곤스러워서. 하지만 분명히 능력에는 정당한 평가와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방법 중의 하나'라 믿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에 뒤따라야 할 것은 공감과 연대라고 믿는다. 이것은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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