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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Jan 14. 2019

인간이 미안해 - 영화 <언더독>

영화 <언더독> 리뷰

이 글은 브런치에서 제공한 브런치무비패스를 통해 관람 후 작성한 글입니다.


 어렸을 때, 내가 살았던 동네에 개농장이 있었다. 시골도 아니고, 인천 부평의 도심 한 복판이었다. 물론 집에서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TV다큐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하는 악명 높은 개농장이었다. 그땐 그 개농장에서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몰랐다. 실제로 그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고, 부평 시내를 끼고 있는 야트막한 산들 중에 정확히 어디에 개농장이 있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개농장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부터는 늘 그곳에 갇혀있을 개들이 생각났다. 편안하게 발을 디딜 수도 없이 발이 푹푹 빠지는 철조망 위에서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는 불쌍한 개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한밤중 침대에 누워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라도 들릴라 치면 혹시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닐까 귀를 기울이곤 했다. 분명 집 근처 주택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일 것이 분명함에도, 괜스레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이젠 그곳을 떠나 이사를 온 지 오래지만 아직도 종종 까만 강아지만 보면 그곳 어디엔가 있었을 개농장이 떠오른다. 우리 집에서 역까지 가는 길에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는데, 그 할아버지가 까만 개 한 마리를 키우셨다. 늘 그 앞을 지날 때면 대문을 기웃거리고 깜순이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언젠가부터는 할아버지와도 친해져서 마당에 들어가 앉아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며 깜순이와 놀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등하굣길이 반대방향에 있어서 한동안 깜순이를 보러 가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에 찾아갔을 때. 나를 반기던 깜순이 대신, 마당엔 텅 빈 개집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영화 <언더독>의 '밤이'. 밤이를 보는 내내 깜순이 생각이 났다.


 내가 깜순이를 보러 가지 못했던 두세 달 동안 깜순이는 새끼를 낳았고, 동네 개장수가 깜순이는 약을 먹여 죽이고 새끼는 깡그리 데려가 버렸던 것이다. 아주 어릴 때의 일이지만, 아직도 혼자 남은 할아버지의 쓸쓸한 얼굴이 기억난다. 내 작은 손을 붙들어 두드리며 깜순이의 죽음을 알리던 할아버지의 텁텁한 그 손이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깜순이는 누군가가 버린 강아지였다. 여기저기 떠돌던 것을 할아버지가 거둬 키우셨고, 처음 할아버지 댁에 들어왔을 때는 뒷다리를 조금 절었는데 할아버지의 정성으로 장애 없이 튼튼한 성견으로 자랐다. 다리를 전다고 버려졌을 깜순이는 다시 저를 더없이 사랑해줄 사람을 만났지만, 기어코 또 다른 사람에 의해 스러졌다.


영화 <언더독>의 주인공 '뭉치'


 '인간이 미안해, 정말.' 언더독을 보는 내내, 계속 그런 생각이 났다. 영화 <언더독>은 주인공 '뭉치'가 주인에 의해 버려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생각보다 커져버린 개를 감당할 수 없어진 주인은 사료 한 포대와 함께 산기슭에 뭉치를 버리고 간다. 너무 잔인하게도 공을 던져 뭉치를 유인하고는 차를 타고 휙 사라져 버린다. 남겨진 사료 포대 옆에서 주인이 물어오라한 테니스공을 물고 비를 쫄딱 맞고 앉아있는 뭉치. 버려진 뭉치. 버려진 게 아니라 기다리는 중이라 믿고 싶은 뭉치가 오도카니 앉은 모습에 눈물이 났다. 버려진 뭉치의 앞에 나타난 다른 개들. 역시 이 자리에 버려진 개들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뭉치는 병든 강아지가 버려지는 광경을 제 눈으로 목격하고 그제야 버려짐을 실감한다.


 사람들에게 쫓겨서, 개장수에게 쫓겨서 생명을 위협받던 개들은 그들만의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찾으러 떠난다. 그 과정에는 인간에게 버림받은 개들과 인간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자연의 개들이 함께한다. 서로 삶의 모습이 다르기에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결국 둘 다 인간으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로, 삶을 위해 연합해서 위기를 헤쳐 나간다. 영화는 계속해서 악랄한 인간상의 대표 격으로 표현되는 개장수 캐릭터를 통해 주인공들을 위협으로 몰아넣지만, 개들은 서로 의기투합해서 아슬아슬한 생존을 이어간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언더독(underdog)은 '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약자'를 의미한다. 영화 <언더독>은 인간에게서 버림받거나, 인간에 의해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작은 동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해 내는, 결국 이기고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리고 어리숙하고, 인간처럼 약지 못한 존재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가슴속 한 구석에 가진 존재들. 그들만의 낙원에 도착하는 과정에 너무나 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있었기에, 낙원에 도착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엔딩이 더욱 평화롭게 느껴졌다. 언더독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한편으론 마음이 좀 아렸다. 실제 버려진 동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기는 동물들은 과연 저런 낙원을 찾아갈 수 있을까? 우리 주변 현실의 개나 고양이를 생각했을 때 이것은 정말 동화 같고 아름다운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 또한 영화가 할 일이지만, 그 현실을 바꾸는 일 또한 영화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언더독 관련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몇 개 읽었다. 그중엔 어이없는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댓글들도 몇 있었다. "저런 게 사실이라면 개를 버리는 게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닌 것이 아니냐", "개들도 사람이랑 사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이 더 낫다." 같은 류의 댓글들이었다. 현실에서 인간의 손에 버림받은 개들은 절대 낙원에 갈 수 없다. 적어도 살아서는 그럴 수 없다.


 인간의 이기심과 동물들의 재기 발랄한 생존기를 잘 보여준 영화지만, 한 편으로는 현실의 언더독들을 위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다. 귀여운 강아지들의 해피엔딩을 바라보며 행복한 마음이 들었지만, 영화관 문턱을 나섬과 동시에 찬바람 부는 길바닥 위 동물들의 현실이 더 크게 와 닿았다고나 할까. 최근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벌인 일들로 인해 세간이 시끄럽다. 나 또한 케어를 비롯한 여러 동물보호단체에 종종 후원을 해 왔고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기에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때맞춰 개봉하는 영화 <언더독>이 이런 사회문제와 맞물려 동물들과의 제대로 된 공존을 위한 인식 제고와 가이드라인 마련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8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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