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하늘에묻는다(Forbidden Dream, 2018)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천문:하늘에묻는다>(이하 천문)는 세종 24년에 일어난 안여사건을 바탕으로 한 팩션 사극 영화입니다. 안여사건은 오늘날에도 성군(聖君)이라 불리는 임금, '세종(한석규)'의 가마가 부서진 사건으로 당시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장영실(최민식)'이 파면을 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세종'과 '장영실'의 행적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조선시대 위인이라 불리는 인물을 다뤘다는 점.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배우들의 캐스팅. 이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기엔 충분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 기대에 비해 사족을 많이 다룬 감이 있으며, 그로 인해 소재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영화 <천문>은 '장영실'이란 인물이 어떻게 '세종'의 눈에 들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천문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조명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천문연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농업의 발전이 곧 조선의 경제 발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농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경작 방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날씨와 계절에 대한 정보입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원천은 천문연구에서 캐낼 수 있는 것이고요. '장영실'에게도 하늘의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노비라는 신분 탓에 하루 종일 땅만 바라봐야 하는 삶을 사는 그를 위로해주는 것은 밤하늘에 수 놓인 별들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세종'과 '장영실'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들이 꿈꾸는 조선을 위해 천문연구에 몰두하며, 벗이 되어주었습니다.
전반부의 이 흐름은 '한글'이란 소재의 등장하면서부터 급변하게 됩니다. '누군가 안여를 건드렸고, 이는 명과 결탁한 대신들이 배후에 있을 것이다.'라고 외치는 '세종'. '세종'에게 용서를 구하는 와중에 '한글 창제'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라 하며 대응하는 '영의정(신구)'. 이런 전개는 인물의 무게중심이 '세종과 장영실'이 아닌 '세종과 대신들'로 바뀌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장영실'이란 인물은 어느 순간 병풍이 돼버린 셈이죠. 이미 이 영화의 본질이었던 '세종과 장영실'의 천문연구는 이미 온데간데없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영화 후반부, 안여사건이 '장영실'을 살리기 위한 '세종'의 자작극이었단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게중심은 다시 '세종과 장영실'로 돌아옵니다. 이는 '장영실'을 살리기 위한 '세종'의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영실' 또한 선택을 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을 위한 거짓 자백이 그것입니다. 한 때 의지하며 꿈을 꾸었던 그들이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부분입니다. 그만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고요.
그 선택 이전에 '장영실'은 '한글'연구 때문에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세종'에게(질투에 가까운) 서운함이 있었습니다. '세종'의 글자에 대한 애착 때문에 언쟁을 벌이기도 했고요. 앞서 언급한 후반부에서 '장영실'은 비범한 선택을 하지만 그것에 의아함이 드는 것은 '세종'에게 '한글'이 어떤 의미였는지 '장영실'이 깨닫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세종'과 '장영실'이 다시 만나 해후를 하긴 하지만 이 것이 '한글'이란 소재를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해소라 보기도 어렵고요. '세종'과 '장영실'이 서로의 선택에 슬퍼하며 외치는 것만으로 이를 아우르기엔 부족함이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나친 사족으로 인해 본질을 잃어버린, 그 사족마저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더 아쉽기만 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꿈꿨던 조선의 모습이 실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영화의 큰 패착이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