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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다반사 Apr 19. 2022

담담하게 말하고, 무겁게 누른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Flee, 2022)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대부분은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인 무게감이 어느 정도 있는 편입니다. 대다수가 분노하고, 부조리라 느끼고, 고쳐야 한다고 느끼는 경우의 일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이런 영화들이 개봉하면 세간의 주목을 받긴 하지만, 세상의 부조리를 고칠 만큼의 힘은 부족합니다. 금방 불타오르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게 부지기수죠.


 그런 이유에서 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소재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적어도 그 소재를 자극적으로 소비하려 들지 말아야 한단 이유에서 입니다. 누군가에게 그 소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민감하고, 심지어 두려울 테니까요.


 영화는 한 사람의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유년시절부터, 내전으로 인한 피난생활, 가족과의 이별,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살기 위해 그가 짊어져야만 했던 비밀들. 그의 고백은 좀처럼 겪기 어려운 터라 쉽게 공감할 수도, 그 무게를 쉽게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살기 위해 피난민이라는 것을 숨기고, 엄연히 살아있는 가족들을 부정하고, 비밀로 간직해야 하는 아픔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런 비밀을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해선 굉장한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비밀을 들을 누군가에 대한 신뢰도 분명해야 하죠. 영화는 그런 주인공의 용기에 대해 ‘품위와 절제’로 답합니다.


 주인공의 고백은 그가 깊숙이 가둬둔 트라우마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보통의 영화가 트라우마를 (때론 자극적으로) '재현'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게끔 표현합니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겠다는 감독의 절제가 돋보이는 부분이죠.


 주인공을 향한 배려도 돋보였습니다. 카메라로 고백하는 모습을 담기보단 편안한 자세에서 나직이 그때의 기억을 읊조릴 수 있게 하는 배려. 트라우마에 대한 고백을 강요하기보단,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게 만들어준 배려. 이런 배려가 영화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는 점이라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 영화'가 지향해야 할 점이 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극적인 표현이 분노를 일으키기는 쉽지만, 우리 기억 속에서 금방 휘발되어버리는 한편, 당사자에겐 또 다른 상처로 남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소재를 소비시켜버릴 것이라면, 적어도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도록 절제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담담한 것이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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