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zi Jul 25. 2024

005. 할머니의 축지법

우리 할머니는 체구가 무척 작으셨다. 140cm 정도 되셨을까? 돌아가시기 전에는 더 작아지셔서 정확한 수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작으셨다. 그 작은 체구로 초등학교 때까지 손주들을 업어주시고, 새벽기도도 가시고, 환갑이 훨씬 넘어서까지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도 하시고, 내가 서울로 대학에 왔을 때는 매 끼니와 방청소도 많이 해주셨다. 그 모든 일을 챙기시느라 할머니의 두 발은 늘 바빴다. 할머니와 함께 외출했던 어느 날이 기억난다. 함께 인도로 걷던 할머니가 갑자기 아파트 화단으로 들어가셨다. 말도 없이 옆으로 는 할머니를 불러 어디 가시냐고 물었다. 할머니 왈, ‘너는 콤파스가 기니까 인도로 천천히 걸어와. 나는 콤파스가 짧아서 그 길로 안 가고 이렇게 길을 가로질러 간다. 슈퍼에서 만나자!’.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어린 큰 고모를 안고 북한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오셨다. 피난길 중간에 정말 영화처럼 할아버지와 재회하시고는 2남매를 더 낳으시고,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여의신 채 신앙에 의지하고 남은 자식들을 돌보며 혈혈단신 그렇게 살아오셨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삶의 무게를 그 조그마한 체구로 모두 받아내며 살아내기 위해, 남들보다 빠르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당신만의 지름길을 개척하며 살아가셨던 것 같다. 5년 전 여름 어느 날 하늘나라로 가신 할머니가 그리울 때가 있다. 나를 앞서가시다 뒤를 돌아보시곤 명랑하게 ‘나중에 만나자’고 약속하셨던 그날이 떠오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004. 막상 혼자 있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