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차나 May 14. 2022

꼭대기에 있는 집에 살던 취준생 둘

오르막길도 괜찮아요

대학시절, 유럽에서 보낸 교환학생 학기가 끝이 났을 때. 아쉬움도 잠시, 나는 또다른 꿈을 꿨다.


본교로 돌아가면 꼼짝없이 공부해야 했지만, 첫 자취생활을 앞두고 마냥 설렌 것이다. 엄마가 방을 얻어놓았다는 서울역으로 향하며 집채만 한 이민가방이 무거운 줄도 몰랐다.


그 시절 내가 등반한 곳은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서울역은 입국 몇 달 전 네덜란드에서 엄마 전화를 받고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찍은 곳이다. 위치상 중심이라 막연히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학교에서 서울역까지는 지하철로 5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역에서 집까지는 더 오래 걸어야 하는 게 함정이었다. 눈 오는 날 썰매를 탈 수 있는 경사는 덤이었다.


나보다 며칠 늦게 도착한 하우스메이트, 친오빠를 마중 나가 집까지 가는 길을 안내했다.

“이리로 가면 15분밖에 안 걸려.”

지름길로 가야 지하철역까지 15분만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오빠에게 지름길을 알려주며 우쭐했지만, 오르막길은 우리 자취생활의 복선과 같았다.


4학년이 된 나는 전과 달리 학점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공부했고 졸업을 못할까 걱정하며 시험을 쳤다. 그러다 서울역에서 집까지 숨도 차지 않고 오르게 됐을 때쯤,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자기소개서, 인적성 시험, 면접... 한 판을 깨면 더 높은 산이 있는 코스로 안내받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불합격인 문자를 받은 밤에는 벼랑 끝에 선 것 같았다.


그 시각, 옆방에서는 요리학교를 갓 졸업하고 상경한 오빠가 이불속에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는 셰프 꿈나무에서 요식업 비관론자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주방에서 선임에게 일을 배우던 오빠는 군대에 다시 간 것 같다며 나만큼 세차게 머리를 뜯었다.

마지막까지 오르고 또 올라야 했던 예전 집

내가 대기업에서 중견, 아니 소기업도 좋다고 눈을 낮췄을 때, 오빠는 눈을 밖으로 돌렸다. 요리를 할 거면 임금이 높은 호주에서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해, 출국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제 오빠를 괴롭히는 것은 선임이 아니아 영어 점수였다. 책상을 일찌감치 떠나 주방으로 간 오빠가 영어라니. 십 년 만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오빠는 오를 수 없는 나무를 쳐다보는 사람 같았다.


그럼에도 종일 책상에 붙어 있었고, 엄마카드로 치킨을 시키며 파이팅을 외쳤다.

어려운 시절에도 작은 기쁨은 있었다.

실력은 기어가듯 늘었지만, 집의 계약기간이 끝나갈 쯤에 오빠는 합격점수를 넘었다. 다행히 나도 취업을 못 하면 짐을 싸겠다고 선언한 날을 앞두고 직장인이 됐다.


오빠가 호주로 떠난 후, 나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잘 체크해 새집을 얻었다. 물론 높은 곳에 있는 집은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르막은 없어도 그만큼의 불편은 꼭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여름에 신나게 계약했던 역세권 집은 겨울에 너무 추웠고, 다음 집에서는 층간소음이라는 괴물을 만났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원룸에서 투룸으로, 자취방에서 신혼살림으로 집과 함께 내 사정도 나아졌지만, 평지만 걷는 날은 오지 않았다.

한결 평평해진 집 가는 길

네 번째 집에서 나는 마침내 오르막길 피하기를 체념했다. 대신 오르막길은 절벽이 아니기에 계단을 오르듯 찬찬히 가면 되고, 미끄러진다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발걸음이 경쾌해질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약 빨리 끊는 법 아세요?” 의사가 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