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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차나 Sep 17. 2022

얼떨결에 글밥을 먹으며 하는 후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감히 나와 비교할 수 없는 문장이지만 가끔 글을 쓸 때 저 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시에 담긴 맑은 뜻과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내용에 공감해서다. 사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 나는 글을 너무 가볍게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을 빠르게 쓰는 편이다. 단어 하나를 제대로 고르기 위해 종일 고심한다거나, 서랍 속에 묵혀둔 글을 손때 묻혀가며 고치고 또 고치는 편은 아니다.


전공에 이어 직업까지 글과 연관된 것을 하게 되면서 훈련된 면도 있고, 무엇보다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소한의 필요만 채우면 더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별로 자랑스러운 사실은 아니지만 나는 대학에서 글을 전공했다. 당연히 대학시절 내내 장문의 글을 썼다. 전공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택한 죄였다.


졸업 후에는 기자가 되었다가 지금은 에디터로 대충 콘텐츠라고 통칭하는 좀 더 상업적인 글을 쓰고 있다.


어릴 때는 읽고 쓰는 걸 참 좋아했는데. 얼떨결에 글밥을 먹고 사니 글은 그냥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운전을 차 모는 느낌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동하기 위해 하듯 말이다.


이 얘기를 왜 길게 하냐면, 브런치에서 뵙는 작가님들이 부러워서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님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브런치 특성상 글이라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순수하게 읽고 쓰는 일을 즐기고 한 치의 의심 없이 글쓰기를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로 여기는 사람들이 부럽다.




세상에 내놓는 한 글자, 한 문장에 한가득 애정을 담은 글은 티가 난다.


핸드폰 액정 너머인데도 마치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자처럼 정갈하고 깊은 글의 맛이 느껴진다. 그 속에 담긴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는 진정성이 느껴질 때면 한없이 부럽고,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에 이질감을 느낀다.

나도 내 글에 그만큼의 애정과 즐거움을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 실력 성장은 차치하고서라도, 스스로가 좀 더 즐겁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내가 좋아서 뭔가를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곳은 브런치뿐 아닌 것 같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분명 나와 똑같은 회사를 다니는데, 지난주에 나랑 같이 타 부서 지원 나가서 개고생 한 사람인데, 세상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 마냥 행복해한다.




어떻게 이 회사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지? 사내 문화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나 만족하며 다니다니. 처음엔 그저 신기하다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회사를 즐기며 다닌다는 게 가능한 건지 의문이기도 하고.


그런 이유로 그 사람을 나도 모르게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어느 회식 자리에서 비밀을 알았다.


입담이 좋은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 전 직장 이야기 등을 오가며 거침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듣다 보니 알게 된 점이 있었는데, 그는 인생 어느 시점에서도 너무 힘들었다거나 뭔가가 되게 싫었다고 말하는 때가 없었다.


사람들 앞이니 싫은 소리 안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인생 면면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그는 회사에서 온갖 불만과 민원을 직통으로 받아 해결하는 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가끔 지나가다 전해 듣는 이야기만으로도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보람과 재미를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내가 찾은 결론은 이렇다. 그는 이 회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그렇기에 자신한테 주어지는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끝내 명랑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 같다.




다시 글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이곳 브런치에서 그 동료를 보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낀다.


수익을 내는 채널도, 대중적인 소설네트워크도 아닌 이곳에서 자발적으로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전쟁통 같은 세상을 살면서 그리 아름답게 깎은 말의 조각을 내놓을 수 있는지, 자주 감탄한다.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흙탕에서 반짝이는 진주 같다.


비록 지금 나는 갖지 못한 진주이지만, 이곳에서 글 여행을 하다 보면 이들의 열정이 옮겨 붙는 것 같다.


어느새 나도 이렇게 목적 없는, 글을 위한 글을 쓰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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