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싫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에요
요즘 삶의 화두 중 하나는 ‘비워내기’다. 당장 들고 나가는 가방을 가볍게 비우기, 욕심을 비우기… 그중에서도 시간과 마음을 가장 많이 쓰는 건 집을 비워내는 일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물욕이라는 게 생겼다. 세상에는 좋은 것, 예쁜 것, 귀여운 것이 너무도 많았다. 마음에 드는 전부를 살 수는 없었지만 5,000~30,000원쯤 하는 작은 물건들을 소소하게 사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모으기를 벌써 4년. 어느새 집은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 찼다. 개중에는 포장을 뜯지 않은 것도 많다. ‘취향’이라는 이름 아래 사들인 물건들은 집안에서 먼지만 쌓여가다 끝내 버려지는 일이 잦아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소비생활이 지속가능할 리 없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현저히 길어지면서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집을 둘러보자, 어울리지 않는 가구들이 조악하게 배치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짐은 또 어찌나 많던지. 무엇을 더 산다고 해도 놓을 공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곧바로 손을 뻗어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순서를 정해서 거의 다 쓴 것부터 빨리 비워내야지, 일단 이것들은 안 쓸 것 같으니 서랍에 넣어놓아야지, 그리고 지난 몇 달간 손도 안 댔던 이것들은… 이것들은…
톤에 안 맞는 화장품, 이미 뒤축이 떨어진 운동화, 몇 년은 꺼내 보지도 않았던 옷들. 버려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아깝다고 생각하는 마음보다 물건에 얽힌 추억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이건 부모님이 사 준 건데, 이거 받은 날은 참 특별했지 같은.
그래서 아직 못 버렸냐고 물어보면 O. 앞으로도 안 버릴 거냐고 물어보면 X. 4월 말부터 5월 초에, 6일간의 긴 휴가를 냈다.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든든하게 아침 먹은 후에, 스피커의 볼륨을 한껏 높이고 청소를 시작할 것이다(feat. 공식 노동요). 일명 ‘과감하게 골라내고 버리면서 비워내는’ 시간.
짧은 편지 하나에도 구구절절한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명쾌하게 결심했다. 비운다는 행위가 주는 마음의 평안함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누군가와 의무감에 약속을 잡을 필요도, 연락을 꾸준히 주고받아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지내는 일상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했다. 더이상 사랑 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속 시끄러운 날이면 그냥 휴대전화를 끄고 요리를 하거나 몇 시간씩 TV만 보았다. 이렇게 해도 괜찮다는 걸 몰랐다, 바보같이.
딱 한 번 정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 있다. 어렸을 때의 나는, 가족이라면 응당 화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왜 우리 가족은 다른 애들처럼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지 궁금했고, 걱정됐고, 불안했다. 물론 지금 보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산다. 살을 맞대고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라면 어쩔 수 없는 다툼과 의견충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너무 어려서였을까. 그때의 나는 ‘화목한 가족’이라는,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놓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몇 년을 끙끙대다 마지못해 욕심을 버렸을 때,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