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4월 24일
날씨: 오랜만에 봄. 어제까지만 해도 겨울
글쓴이: 수아
정말? 이렇게 집 이야기로 돌아간다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도 집 이야기를 쓸 수밖에. 물론 집 말고 다른 할 이야기가 없긴 했어.
“내 삶의 공간에 오래 있을 물건들이니까. 결국 어느 시점에 다 두고 가더라도 함부로 고르기는 싫었어.”
맞는 말이다. 심지어 ‘다 두고 가는 시점’은 생각보다 늦게 온다. 2011년, 돈도 없고 취향도 없이 자취를 시작하면서 샀던 물건이 2020년의 집에도 존재하고 있으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 버리고 오래 쓸 새로운 가구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오히려 지금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까, 그리고 다른 가구들과 어울리게 할까. 페인트를 좀 칠하면 되려나. 이런 고민들을 하며 집 구조를 일주일에 한 번씩 바꾸느라 분주하다.
그런 와중에 꼭 사수하려는 시간이 있다면, 오후 4시다. 천천히 저물어가는 바깥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시간. 게다가 최근에 선캐처를 선물로 받아 서재 창문에 걸었더니, 빛을 받아 온 방에 무지개를 흩뿌린다. 그 시간에는 TV를 보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방으로 들어와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는다.
시간을 꽤 아까워하는 편이다. 지나가는 계절을, 어쩌면 미래에는 모이기 힘들 친구들과 보내는 ‘이 시절’을 깊이 아쉬워하며 그 끝자락을 잡고 종종거린다. 그것만이 현재를 즐기고, 지금을 잘 지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깨달은 건, 몸과 마음이 온전히 그곳에 있었던 적이 많지 않았다는 거다. 아직 벚꽃이 지지도 않았는데 곧 지나갈 봄을 아쉬워했다. A라는 친구와 함께하면서도, B와의 함께가 아님을 아쉬워하며 마음을 일정 부분 떼어내어 다른 곳에 두기도 했다.
오후 4시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많다고 했지만 사실 카톡하는 시간이 제일 많다(갑분자기고백). 아니면 쓸데없는 구글링을 하거나(예컨대 ‘뭐였더라’를 검색한다든가). 심지어 그냥 인스타그램만 보고 있을 때도... 그러고 나면 훌쩍 두 시간이 지나고 햇볕이 주는 특유의 따뜻한 열기가 사라진다. 그렇게 좋아하는 시간이 사라진다. 글을 쓰는 지금도 막 해가 건물 뒤로 넘어갔는데, 얼마나 아쉬운지!
Carpe Diem. 현재를 즐기는 건 어떤 걸까. 좋아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린다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기분일까. 친구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답을 알려줘 (mic)
P.S. 한때 나의 별명은 ‘햇볕성애자’였다. 해가 잘 안 드는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그렇게 우중충하던 사람이, 밖에 잠깐만 나와도 종종종 뛰어다니곤 했으니까. 해가 쨍쨍하게 뜬 날이면 더욱 들떴으니까. 결국 송수아의 행복을 결정하는 건 햇볕 아니겠냐며.
그래서 대-코로나 시대에 다른 것보다, 햇볕을 쬘 수 있는 공공공간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