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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May 14. 2020

우리가 함께 산다면

2020년 5월 14일

날씨: 흐렸다 맑음

기록자: 수아


뽈이 왔다. 한국에, 그것도 우리 집에




나는 청소를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하는 편이다. 너저분하게 널린 살림살이가 눈에 걸리지만 할 게 있다는 이유로, 혹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냥 모른 체 잠들기 일쑤다. 사실 그리 깔끔을 떠는 스타일도 아니라 책장 위 소복히 쌓인 먼지 같은 것은 애교로 넘기는 편이다. 반면, 뽈은 매우 깔끔하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로 방을 닦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느 날에는 가스레인지를 얼마나 깨끗이 닦았던지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눈이 부셨다.


나는 집에서 요리를 잘 해 먹지 않는다. 회사에서 자주 저녁을 때우는 탓도 있지만, 요리 창의성이 별로 없어 식재료를 가지고 노는 것에 흥미를 못 느낀 것도 있다. 반면, 뽈은 (실제로 그의 의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많은 것을 직접 요리해 먹는다. 뽈이 온 이후로 나는 집에서 자주 저녁을 먹었다. 연어스테이크, 바질페스토파스타, 갈치조림… 1인분이 아니라 2인분을 만드는 삶은 조금 더 쉬웠고, 즐거웠다.






뽈이 온 이후로 나는 자주, 집에 일찍 들어온다.

그가 온 이후로 나는 정말로 집에 가는 것이 즐거워졌다. 나를 맞아주는 건 적막이 아니라, 뽈의 취향대로 흘러가는 플레이리스트다. 그는 주로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가끔 요리를 하며 맞이했다. 언젠가는 외식을 하고 들어와 영화를 보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밥을 해먹고 나가 동네 바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지금 뽈은 잠시 여행을 떠났는데, 그 조금 있었다고 뽈이 떠난 자리가 휑하다. 어제 나는 조금 외롭다고 느꼈다.




근래의 나는 확실히 공허했다. 저녁이면 괜히 카카오톡으로 말을 걸기도 했고, 의미 없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많은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 끝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확실히 뽈이 온 이후로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시간도, 의미 없는 말을 SNS에 올리는 빈도도 줄었다. 그는 자기가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듯 싶지만 정말로, 정말로 나는 요즘이 드물게 평안한 나날들이라고 느낀다.



서울을 벗어나 사는 게 꿈이다. 혼자는 싫고, 친구들과 함께. 그 친구들이 네 명의 문어라면 더할 나위 없겠고.

우리 네 명의 성격은 너무나도 달라서, 함께 살 수 있을까 (혼자서) 걱정도 많이 했더란다. 하지만 동그라미와도 한 달을 지내보았고, 뽈과도 지내본 결과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서로의 좋은 점은 북돋아 주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네 가구가 함께 살아가는 소도시의 삶은 고난스러우면서도 멋질 것 같아- 나는 이 꿈을 버리지 않았으니, 여러분의 미래 계획에 참고해주길 바라.


P.S. 이 글은 철저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쓰였으며, 뽈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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