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30년 BERG(베르크)
처음 베르크를 알게된 건 대학원 친구 F로부터였다. 베르크는 F가 일했던 곳으로, 立ち飲み(타치노미)가 가능한 펍이라고 했다. 퇴근 후 잠깐 들러 가볍게 한 두잔 마시고 귀가하는 사람도 많다고. 그런데 인기메뉴는 핫도그(내게 핫도그와 맥주는 조금 이상한 조합이었다. 밀가루에 보리까지 섭취한다고?), 위치한 곳은 신주쿠. 뭔가 들으면 들을 수록 가늠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언젠가 F는 자신의 그림이 베르크에 전시 된다고도 했었다. '펍인데 전시도 한다고? 정말 요상하군. 그래도 궁금은 하다.' 정도가 베르크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다.
*일본은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대신 빠른 회전율을 기대하기 위해 의자를 없애고 서서 마시고 먹게 하는 立ち飲み(타치노미)・立ち食い(타치구이) 음식점이 많다. 맥주나 라면, 소바 등 간단하고 빠르게 마시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주로 판매한다.
항상 말만 듣다가 처음 베르크에 간 것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 걷기 좋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정말 이런 데에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낯선, 그런 곳에 있었다) 이제는 알바를 그만 둔 F는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과 머쓱해하며 인사를 나눴고 나는 그 사이 베르크를 훑어보았다. 덕지덕지 요란하게 붙은 메뉴판이나, 담배냄새로 자욱한 공간. 혼자서 조용히 또는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스피커에서는 정말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자가 있는 자리는 만석이라 F와 나는 자연스레 의자가 없는 높다란 테이블 앞에 섰다.
F가 이 가게를 알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로부터였고, 베르크를 좋아하시던어머니의 권유(?)로 이곳에서 알바를 시작했다고 했다. 가게가 좁아 손님들로 북적이고, 넘쳐나는 주문량에 정신이 없어서 우왕좌왕 좌충우돌했던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베르크를 나서기 전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신다는 빵을 하나 사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산책을 하다가 귀가했다.
그 후로 자꾸만 베르크에서 맛 본 시원한 생맥주나 적절한 염도의 탱탱한 소시지가 든 핫도그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신주쿠까지는 약 40분 정도가 걸린다. 매일매일 신주쿠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한 번 어떤 것에 빠지면 그 일에만 몰두해버리는 성격인 탓에, 베르크에 빠진 나는 일주일에 두 세번씩 베르크에 발걸음했다. 묵직한 영화를 보고난 날, 눈에 눈물을 달고 갑갑한 마음으로 혼자 가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기도 하고, 책을 읽고 싶을 때 들러 혼자서 책을 읽다가 오기도 했다. 자주 혼자, 가끔씩 친구와 함께 방문해 쉬이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추가를 외쳤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담배냄새가 몸이며 옷에 잔뜩 배어 진동을 하는데도, 좁아터져서 자꾸만 사람들의 팔꿈치와 부닥치는데도, 빨리 먹고 일어나라고 눈치를 주는데도 왜 나는 그렇게 베르크에 빠졌을까.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정말 한번에 왁! 다 쏟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곳인데, 코로나로 인해 몇 달째 전철에 올라탄 적이 없는 내게 이제 베르크는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인구도 많고 땅뙈기도 넓은 대국이다. 그래서 내게는 기회의 땅처럼 보였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니 기회의 땅은 오만의 땅이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역병이 대유행하는 이 시국에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던 일본 정부는 한국과 자주 비교되고 질타받았다. 심지어 올림픽도 연기되어 경제적 피해도 막심한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질병관리본부와도 같은 대응책을 내놓을 수 없는 일본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외출자제 요청' 뿐이었고 그 결과 가게들 또한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요청'이라는 부드러운 말투 안에서 은근한 록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긴급사태선언 후 어느덧 1개월이 지났고 그마저도 연장되어 5월말까지는 영락없이 지금의 분위기가 이어질 것같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경제가 바닥을 치니, 사람들이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상황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면서도 몇몇 상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를 열어 포장판매나 배달로 영업손실을 메우려고 했는데 이때, 언제나 트위터에 뜨거운 문장을 발신하던 베르크의 점장은 한발 더 나아가 '마르쉐' 컨셉으로 작은 슈퍼마켓을 꾸며 가게를 연다는 트윗을 올렸다. 가게에서 먹고 마실 수는 없지만 장을 보듯 식자재를 사갈 수 있는 공간으로써 문을 열겠다는 것이었다. 처음 점장의 트윗을 읽었을 때는 화부터 났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 가게를 열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다니. 그로 인해 감염자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니 베르크는 그에게 생업이었고 가게에 놓인 여러 식자재에서 애쓴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이를 외면할 수 없었던 점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를 열기로 결심했고 이는 자신 뿐 아니라 주변에 함께 엮여있는 사람들과의 상생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신주쿠역에서 잘 보이지도 않아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고 마는 이 작은 가게가 3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함께 살려고 하는 바로 이 절실한 마음 덕분이 아닐까.
하루 35만명이 오가는 신주쿠역은 세계 유동인구수 1위의 지하철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그런 곳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가게, 베르크. 길을 잃고 빨려들어온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모자라 핫도그도 내어주는 베르크. 차별 없이, 편견 없이, 불편한 마음 없이 혼자서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즐기다 갈 수 있는 신주쿠사람들의 낙원, 베르크. 아침에 가도, 점심에 가도, 한밤에 가도 신선한 맥주를 내려주는 베르크(실제로 7시반부터 개점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맥주를 마시는 이들도 있다), 의외로 카레맛집으로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는 베르크. 모양새와 달리 의외로 몸값이 비싼 집기들이 가득한 베르크. 스탭들이 만드는 오리지널 메뉴가 많은데 무엇하나 맛없는 게 없는 베르크. 수요량이 워낙 많아 신선한 맥주를 생으로 마실 수 있지만, 심지어 커피도 맛있는 베르크.
그러니 동그라미 뿐 아니라, 수아도 뽈도 내 손 붙잡고 꼭 여기는 함께 가고 싶다. 그럴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다같이 이 공간에 넷이 함께 있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런던의 9와 4분의 3 승강장 앞에서 목도리를 휘날리며 사진을 찍었다면, 숨겨진 베르크에서는 술취해 얼굴이 빨개진 우리들의 얼굴을 찍고 싶다.
PS. 현재 상황 :
5월 1일부터 베르크는 조금씩 가게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넓혀가는 중이다. 대신 지켜야하는 룰이 생겼다. "사회적 거리를 지키고, 가게에서는 30분 이내로 머무를 것, 대화는 텔레파시로" 우리가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룰을 정해 최대한 지키고, 조심하고, 서로를 위하고, 돕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