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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Oct 27. 2024

말 안 했나? 나 아빠 없는데

지인에게 한부모 가정임을 밝히다

    고등학교 친구 경선이가 결혼한다면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친구는 지방에서 근무하는 직업군인이라 서울에 사는 나와는 만나기가 어려웠었다. 그러다 친구가 경기도에서 근무하게 되어, 드디어 서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몇 년 만이었지만 서로 아는 동창들 얘기부터 가정사까지, 엄마 말로 어릴 때 친구가 평생 친구라더니, 우리의 대화합은 너무 좋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던가, 문득 경선이는 나에게 물었다. "하나야, 너 아빠는?" 어, 경선이랑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나 보구나. 당연히 경선이도 아는 줄 알았다.


    "내가 말 안 했나? 나 아빠 없는데. 어릴 때 이혼했어~"


    경선이는 멈칫하면서 말해준 적이 없어서 몰랐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 초롱이에게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다. 초롱이 말로는 내 말속에서 한 번도 아빠의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던 거 같아서, 어림짐작하고 있었다고 한다.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아빠 없는 게 티가 날 수밖에 없는 거구나. 새삼 놀랬다.

 

    곰곰이 더듬어보면, 학창 시절에 친구들끼리 서로의 부모님 존재 유무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대화 주제를 가진 적이 있었던가? 그저 당연하게 부모님은 계시는 거고, 대화하다가 예사스럽게 '엄마가~''아빠가~'하면서 이야기 나눴던 것 같다. 


    만약 친구가 한부모 가정이면, 나와 그 친구는 서로를 자연히 알아본다. 난 그게 반가웠다. '어, 너도? 나돈데!' 누가 나서서 이야기한 적도 없는 거 같은데, 언제 알았지? 하면 그 시작점을 정확하게 짚기가 어렵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끼리는 따로 선생님께 불려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때문에 우리 반의 누가 무상급식을 받는지, 친한 사이가 아니어도 알았던 거 같다. 그러면서 대충 서로의 가정형편에 대해 짐작해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던 걸까?


    그렇지만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계신 친구와 나의 관계에서는 분명하게 내가 '아빠 없음' 문장을 말했던 때가 또렷이 기억난다. 당황하고 어색해할 상대를 예상하며, 난 항상 뒤에 '난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라고 덧붙이곤 했다. 그리고 잠시 그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나면, 친구와 나는 특별하게 달라지는 것 없이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사람에게 동물과 같은 꼬리가 없어서 불편한 점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답하기 어렵지 않을까? 가져본 적이 있어야 그 부재의 아쉬움을 느낄 텐데, 우린에겐 이미 퇴화되고 없으니 말이다.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빠를 사진으로만 보았다.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아기일 때 두 분은 이혼한 거 같다. 그래서 '부모님'이라는 단어에서 어색함을 느낀다. 나의 부모라는 개념 속에서 부父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하게 부모라는 단어가 쓰이는 상황들 속에서 언제나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아버지가 없다고 말할지, 아니면 그러려니 상대가 넘겨짚도록 지어낼지.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반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 그 친구의 어머니와 함께 버스 가장 맨 뒤 좌석에 앉아서 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친구 어머니는 나에게 부모님에 관해 물었다. 분명 별 의미가 안 담긴 질문이었지만, 나는 듣자마자 고민에 휩싸였다. 아빠가 없다는 것이 창피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그게 일반적인 게 아니란 것은 알았다. 그리고 그 순간은 나의 기억 속 다른 사람에게 아빠의 부재를 말하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나는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지 어려웠다. 미리 생각해 둔 가상의 아빠에 대한 프로필도 없었기에, 정공법을 택했다.

    "아빠는 없어요."

    친구와 친구 어머니는 이모티콘처럼 눈이 크게 동그랗게 떠지면서 놀랐다. 그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잘 몰랐는데, 어... 이거 이렇게 놀랄 일인가? 그다음으로 '어머머, 왜?' 하면서 이유를 묻길래, 다소 당혹스러웠지만, 또다시 숨기지 않고 말했다. 

    "이혼하셨어요."

    계속해서 '왜??' 하면서 궁금증 가득한 꼬리 질문을 받았는데, 기분이 나빴던 건 아니다. 그만큼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기 때문일 거다. 다만,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가족 구성인데, 다수에겐 평범하지 않게 보이는구나,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이질감이 썩 씁쓸했다. 

 

    학생 시절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친밀도에 따라서 굳이 솔직하게 다 말할 필요는 없다고.


    사무직의 직장인이 된 후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기회는 현저히 적어졌다. 그래서 이미 내 가족에 대해 다 아는 오랜 친구들 밖에 만날 일이 없다. 가끔가다 취미 학원이나 청년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쉬는 시간 10분 동안 잠깐 시시한 수다를 떨고, 강의가 끝나면 각자 흩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현재는 새롭게 사귄 지인에게 가족 구성원에 대해 밝혀야 하는 때는 거의 없다.


    그러다 최근 N개월짜리 청년 대상으로 하는 오프라인 에세이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주어진 에세이 주제 중 하나는 가족. 가장 글쓰기 쉬운 소재는 한집에 사는 가족일 테지. 그러나 그에 대해 글 쓰자니, 자연스럽게 한부모 가정이라는 게 드러날 텐데.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어차피 연락 안 할 열몇 명의 사람들에게 굳이 공개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티 나지 않게 외할머니와의 이야기를 써서 제출했다. '엄마' 대신 '부모'라는 단어를 쓰는 치밀함도 놓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돌봄 받았던 어린 시절 기억과 성인이 된 지금은 내가 할머니를 도리어 돌본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나의 에세이에 대해 동화처럼 따뜻하다고 평해주었다. 거짓말은 없었지만,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처럼 보이고자 편집을 의도한 바는 있었다.


    그리고 제출된 다른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어보고 적잖이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와의 갈등을 가감 없이 적어낸 것이다. 어릴 적 빚 때문에 온 가족이 흩어진 일, 술만 마시면 행패 부렸던 아버지, 아버지의 경제적 능력 부족과 가부장적인 면모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하는 내용 등. 그리고 그 가정사에 대해서 누구 하나 특이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철저하게 문장이나 구성에 대해서만 비평할 뿐, 내용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하고 인상 깊게 읽었다며 긍정적인 평들이었다. 나 또한 그들의 글을 읽고 다행이다, 다들 속사정은 비슷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오히려 부모가 1명이었기에 1명과만 갈등을 겪으면 됐던 내가 속 편하게 자란 걸지도.


    다음 에세이 수업과제에서 나는 한부모 가정임을 밝혀야만 전개가 가능한 에세이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주제는 친구였다. 어떤 이야기를 쓸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잠이 안 와서 뒤척이던 어느 새벽에 불현듯 떠오른 게 있었다. 나의 한 유치원 친구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서로 아빠가 없고 언니만 있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 커가면서 그 친구는 술·담배 하는 일진이 되어, 유치원 때의 모습을 아는 나에겐 생경하게 느껴졌던 경험이었다. 이번에는 고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보여준 솔직함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가감 없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때로는 굳이 솔직한 고백이 나의 고민을 우리의 공감대로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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